[뉴스토마토 김하늬 기자] 정부가 그간 외환시장 개입 공개를 꺼린 데는 환율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미국 환율보고서가 발표될 때마다 매번 '환율조작국' 지정을 막기 위해 노심초사 하면서도 공개할 경우 커질 불확실성 리스크를 더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도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가 국제사회의 흐름이라 인식하고 이를 공개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며 G20 회원국에서는 한국·중국·터키만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급한 불은 껐지만 환율보고서 발표 때마다 가중되는 공개 압박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관건은 공개 주기와 방식이다. 미국이 노골적으로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를 압박하고 있어 정부는 투명성을 높이면서도 환율주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수출의존도가 높고 환율에 민감해 적정한 공개수위를 설정하지 않으면 투기세력에 빌미를 줄 위험이 크다.
국가마다 외환시장 개입 공개 시기는 일별, 월별, 분기별, 반기별 등으로 다르다. 유럽중앙은행(ECB)과 홍콩은 장 마감 후에 매일 공개하며 미국은 분기 개입 내역을 한 달 후에 공개한다. 일본, 영국, 캐나다는 월 개입 내역을 한 달 후, 스위스는 1년치를 매년 2월에 알린다. 최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조약에 따라 공개를 결정한 베트남, 싱가포르의 경우 반기별 단위로 6개월 후에 공표하는 방식을 택했다. 미국은 일본, 영국 등의 사례를 들어 한국도 월별 내역을 공개하라고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매 분기 또는 반기별로 공개하는 방향을 잡고, 범위도 순매수 내역만 공개하는 쪽을 희망하고 있다.
공개 내역도 관건이다. 미국은 매수·매도 내역을 자세히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순매수액을 공개하는 게 적절하다는 판단이다. 만약 순매수 내역이 아닌 매수·매도 총액 등 세부내역을 모두 공개하면 투기 세력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 터키, 한국 정도 포함한 일부국 외에는 다 공개하고 있는 상황이고 투명성 제고에 대한 요구가 높기 때문에 깊이 있게 검토하고 있다"며 "환율주권은 우리에게 있고 어떤 의사결정이 내려져도 우리 정부의 환율주권을 지키는 원칙 하에서 결정을 하고 국내에 적합한 공개 수위를 찾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주기와 범위 등은 오는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G20재무장관회의에서 최종 조율될 것으로 보인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연달아 면담을 갖는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OECD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제통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내역을 공개해도 큰 문제가 없지만 한국의 경우 외화유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적정환율 괴리 가능성이 높고, 세부내역을 많이 공개하면 환투기 세력에 이용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부가 미국과 협상할 때 우리나라의 국제통화 특수성을 강조해 주로 1개월 단위인 OECD 국가와는 다르게 분기, 반기 또는 1년 이상 뒤에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세부 내역 역시 특정기간의 총 개입량(순매수 또는 순매도 총액)만 공개할 수 있도록 유리하게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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