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구태우·신상윤 기자] 조양호 한진 회장 일가는 계열사 대한항공을 개인 택배처럼 이용했다. 고가의 명품을 비롯해 초콜릿과 딤섬 같은 식료품까지도 해외에서 몰래 들여왔다. 관세당국과 검역당국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명백한 불법이다.
<뉴스토마토>는 3일 조 회장의 두 딸인 조현아 전 칼호텔 사장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개인 사치품 밀반입에 관여한 대한항공 해외지점 전·현직 관계자들의 증언을 입수했다. 이들은 조현아·현민 자매가 해외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주문한 물건을 직접 현지 공항까지 운반했다고 했다. 또 조현아·현민 자매가 물품 목록을 보내면 해외 지점장이 법인카드 등으로 물품을 구매해 건네기도 했다.
조현아 전 칼호텔 사장(왼쪽)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오른쪽). 사진/뉴시스
해외지점 현직 직원 A씨는 "조현아와 조현민이 온라인으로 쇼핑을 하면 저는 현지에서 물건을 픽업해서 공항까지 가져가 (인천행) 항공편에 전달했다"며 "아이템들은 과자나 초콜릿 등 말도 안 되는 것들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특히 "저는 9년 가까이 거의 매주 2~3차례씩 이 일을 했다"고 증언했다.
A씨는 전달 과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그는 "현지에 도착한 항공기로부터 빈 이민가방을 받으면 현지 지점장에게 건네준다"며 "며칠 뒤 현지 지점에서 여러 물품들이 들어있는 이민가방을 받아서 다시 귀국편 비행기에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이 짐들은 국내편 비행기에 실려 한국에 밀반입됐다.
A씨는 "대한항공 직원의 이름으로 짐은 붙여진다. 그러나 그 직원은 한국에 있지, 현지에 있는 게 아니다"며 "이름 없이 짐만 체크인되서 싣는데, 보통 1등석으로 갔다"고 전했다. 일명 '주인 없는 짐'이다. 또 그는 "많을 때는 어마어마해 한 번에 차량으로 싣지 못한 적도 있었다"며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2~3번, 한 번에 평균 4~5개 상자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최근 본지 보도를 통해 조 회장 일가의 명품 밀반입 의혹이 불거지고 관세청이 카드 사용내역 조회와 압수수색 등에 나서자, 이 같은 배달 주문이 '뚝' 끊겼다고도 했다. A씨는 "조현민 전무 얘기가 나온 뒤로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본사에서 파견 나온 운항총괄 매니저가 "조현아, 조현민의 물품과 관련된 이메일을 다 파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조직적으로 증거 인멸이 이뤄졌다고 폭로했다.
A씨는 조 회장 일가의 짐을 나르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You See Something, Say Something(본 것이 있으면, 말해라)'이라는 말이 있다"며 "공항은 굉장히 예민한 곳이고, 법은 누구나 지켜야 한다. 이런 걸 알고도, 또 보고도 얘기를 10년 가까이 못 하고 있었던 저는 양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고 제보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또 회사를 그만둘 각오로 이 같은 불법을 폭로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며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은폐 지시를 내린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조 회장 일가의 사적 물건들이 특정 국가에서만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란 게 대한항공 직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현직 대한항공 사무장 B씨는 "한 번은 홍콩에서 딤섬을 전달받은 적도 있다"며 "딤섬은 기내 냉장고에 보관돼 인천에서 지상직 직원에게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망고 등 열대과일을 검역절차 없이 들여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과일 등 식료품은 검역당국의 검역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조 회장 일가의 물품이 국내에 밀반입된 경로는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다양하게 제기됐지만, 해외 현지 직원에게서 구체적 증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 외의 또 다른 한진 계열사도 관여됐다. 조 회장 일가가 계열사들을 개인 회사처럼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직 직원 C씨는 "여객터미널에서 빈 이민가방을 받아 현지 지점장에게 가져다 주면, 그 지점장이 가방을 채워준다"며 "그 가방을 다시 여객터미널에 전달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본사. 사진/뉴시스
본지는 지난달 17일 5000달러 영수증이 부착된 조 회장 일가의 크리스챤 디올 드레스가 국내에 밀반입됐다고 단독 보도한 바 있다. 현지로부터 건네받은 명품들은 항공기 일등석에 보관됐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물건들은 공항에 상주하는 대한항공 지상직 직원들이 받아 조 회장 일가에게 전달한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공항 상주직원 전용통로 등이 이용돼 세관의 눈도 피했다.
관세당국과 검역당국의 묵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의전팀이 세관의 협조를 받아 조 회장 일가를 비롯한 극소수 VIP(코드명 A3)의 수하물을 '프리패스'한다고 증언했고, 인천공항에서 근무했던 현직 세관 직원도 대한항공 의전팀의 요청을 받아 통관절차를 묵인하는 게 관례였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이 과정에서 세관 직원 본인과 가족 또는 지인의 좌석 업그레이드와 퍼스트 라운지 이용 등의 특혜가 주어졌다. 대한항공과 세관당국의 유착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관세청은 자체감사에 착수했다.
구태우·신상윤 기자 new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