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가수 루빈(38·Ruvin)이 밝은 표정으로 걸어왔다. 분주히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등지고선. 아이들의 청량한 웃음소리가 그 곁을 아른거렸다. 놀이공원의 해사한 풍경에 봄날의 나른함이 부서지고 있었다.
환하게 인사를 건넨 그는 가방에서 네모난 사각형 사진을 꺼내 들었다. “이 곳을 배경으로 제 첫 앨범이 만들어졌거든요. 앨범 커버도 이 쪽(회전목마를 가리키며) 각도로 찍었어요. 대관람차는 이제 없어져 버려서 아쉽지만요…”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만난 가수 루빈. 자신의 첫 데뷔 앨범 'The First Date'를 들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조은채 인턴기자
지난 8일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만난 루빈은 그곳의 특별함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자신의 음악이 시작된 곳이자 청춘 기억이 한 움큼 묻어있는 곳. 본격적으로 기타를 들던 20살 무렵 정적이고 포근한 정취 덕에 이 곳을 참 많이도 찾았다.
“놀이공원 치고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이죠? 20살 때 이 곳 근처로 이사 왔을 때는 더 그랬어요. 오죽했으면 롤러코스터 직원 분이 항상 ‘세 명만 더 오면 출발합시다’란 말을 하셨으니까요. 놀이기구도 타고, 생각도 정리하려고 많이 왔던 것 같아요.”
2012년 첫 데뷔 앨범 ‘더 퍼스트 데이트(The First Date)’ 역시 이곳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연인의 첫 데이트에 관한 곡인데 평소 자주 찾던 이 곳이 생각났었어요. 제 음악이 처음 출발한 곳이죠. 장소를 고민하다 그 시작을 보여드리면 어떨까 싶었어요”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어린이대공원 내 놀이동산. 사진/뉴스토마토 조은채 인턴기자
18년 간의 음악 생활을 돌이켜 보면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많았다. 2000년 마감 전날 지원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게 된 것도, 2009년 피아니스트 이루마의 곡에 보컬로 참여하게 된 것도 그랬다. 주어지는 기회들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고, 그럴수록 음악생활이 자유롭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2010년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스스로 기회를 만들려 노력했다. 손수 앨범을 제작하고 홍대 클럽을 돌며 공연 활동도 병행했다. 비슷한 시기 결성한 아이리쉬 포크 밴드 ‘바드’는 아일랜드의 전통 음악을 한국적으로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큰 반향도 일으켰다.
“젊었기에 할 수 있는 밝고 자유로운 음악들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초창기 솔로 앨범에서는 자유롭게 제가 하고 싶은 걸 표현하고자 하는 편이었고요. 당시 만든 음악은 지금도 공연 셋리스트에서 빼먹지 않을 만큼 아끼는 곡들이에요.”
놀이공원을 배경으로 인터뷰에 참여하고 있는 루빈. 사진/뉴스토마토 조은채 인턴기자
틈틈이 써온 곡을 추려 2015년 1집 정규 ‘하늘과 닿은 마을’을 냈고, 2년 간의 작업기를 거쳐 지난해 2집 ‘리버스(Rebirth)’를 냈다. 주로 자신이나 주변의 이야기를 캐치해 ‘보편적 정서’로 그려낸 음악들이다. 특히 2집에서는 세월호나 구로동맹파업 등을 겪어낸 이들을 향한 공감의 메시지도 담아냈다.
지난달 25일에 발매된 3집 ‘당신이 듣지 못 했던 이야기’는 1집과 2집의 교차점에 놓인 앨범이다. 자신과 타자 모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니 ‘사람’과 ‘세상’을 향한 앨범이 됐다.
“누구에게나 그 동안 자각하지 못한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거란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더 솔직한 내면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생각했거든요.”
정규 3집 앨범 '당신이 듣지 못 했던 이야기'. 사진/뉴스토마토 조은채 인턴기자
수록곡 ‘길을 따라서’는 인생에 정해진 길이 존재할까, 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곡이다. 졸업과 취업,결혼 등 사회가 당연시 하는 관행이나 관습에 그는 의문을 던진다. “당연하게 여겨져 온 것들이 충분한 이유가 있는지 고민하다 만든 곡이에요. 왜 결혼식은 예식장에서 해야만 하는지, 왜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야 하는지. 그런 것에 대한 이유를 한번씩 생각해 보게 됐어요.”
그런가 하면 ‘해방’은 굴레에서 자유롭게 벗어나는 자아를 노래한 곡이다.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오랫동안 사귀었던 연인으로부터 이별을 당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썼다. 해묵은 관계에서 만들어진 속박이 사실은 스스로를 더 자유롭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그는 노래한다.
두 곡 외에도 앨범에는 아름다운 봄날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리 느껴질 수 있음을 표현한 ‘절반의 봄’, 관계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 모두 결국 같은 존재일 수 있음을 노래한 ‘사람이 있었구나’ 등 우리가 주로 느끼는 ‘보편의 정서’가 빼곡하다.
기타음이 주가 되는 ‘어쿠스틱 포크 사운드’를 기본으로 하되, 매번 음악 분위기에 따라 새로운 시도들도 하고 있다. 이번 앨범에서는 아이리쉬 휘슬을 포함해 장구, 꽹과리를 사운드에 섞어내며 기존 앨범들과 차별화를 꾀했다. 자신의 사운드에서도 관습과 관행을 거부하는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빛나고 있었다.
“앞으로도 음반에 장르가 어떻게 붙건, 편하고 솔직하게 할 것 같아요. 스스로 장르 개념에 갇힌다면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을 완전하게 못 만들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같아'의 뮤직비디오 장소로 루빈은 어린이대공원 내 놀이동산의 회전목마를 선택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조은채 인턴기자
음악을 제하면 그의 삶의 낙은 여행과 맥주, 친구, 그리고 어학 공부. 틈틈이 세계 여행을 다니고 뮤지션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어울린다. 최근에는 미국과 멕시코 등 해외 공연을 돌다 어학 공부의 중요성을 체감해 영어와 일어 스터디도 병행하고 있다.
“밴드 넬이나 피아 멤버들과 맥주를 마시고 떠들며 노는 걸 좋아해요. 모두 음악을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라 지켜보며 자극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여행은 한 달 정도 훌쩍 다녀오는 편이고요. 최근에는 언어 공부에도 관심이 많아 일드, 미드도 열심히 챙겨보고 있어요!”
다음달 2일에는 망원동에서 소규모 공연도 예정돼 있다. 평소 작업하던 공간에 팬들을 초대하고 함께 맥주 파티를 하며 이번 앨범을 라이브 버전으로 들려줄 계획이다.
음악을 여행지에 빗대 달라는 마지막 질문에 침착하고 차분하게 답변했다. “’고향’ 같은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관광객들에게 때묻지 않고, 자본에 잠식 당하지 않는… 언제나 그 자리에 계속있는…”
“한번은 오스트리아 펍에서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800년째 운영돼 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아쉽게 그런 경우가 드물 잖아요. 재개발되든가, 없어진다거나. (대관람차가 있는 어린이대공원 사진을 가리키며) 이곳도 제가 기억하고 있던 때에 비하면 많이 달라졌네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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