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북미 정상회담이 내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기로 확정되면서 이제 관심은 회담에서 다뤄질 의제로 쏠리고 있다. 양국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의견접근을 이루고 종전 선언·평화협정 체결, 북미 관계 정상화 수순으로 이어지는 대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의 우선 의제는 단연 한반도 비핵화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 간 판문점 선언에서 비핵화 관련 언급은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해나가기로 했다”는 정도에 그쳤다. 북핵문제는 결국 북미 간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한 조치였다.
상황은 나쁘지 않다. 북한은 판문점 선언 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등 전격적인 핵동결 선언을 하며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지난 9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2차 방북 당시 억류 중이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석방한 것도 최근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미국도 화답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세 명이 탄 비행기가 착륙한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직접 나가 “그들(억류자들)을 회담 전에 석방해줘 김정은 위원장에게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김 위원장이 그의 나라(북한)를 현실 세계로 이끌고자 한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말까지 김 위원장을 ‘리틀 로켓맨’이라고 조롱하는 등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할 것으로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그렇게 생각한다. 큰 성공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 폐기 등 미국의 요구사항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지평이 해빙 무드로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폼페이오 장관이 기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 대신 ‘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PVID) 개념을 들고 나온 것을 변수라고 지적했으나, 점차 수습되는 모양새다. PVID 개념에 대해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폼페이오 장관이 취임하면서 자기 식의 용어를 쓴 것이지 특별히 다른 내용은 아닐 것”이라며 “기존 ‘완전한’이라는 말에 항구적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PVID는 근본적인 문제해결 의지를 더 강조하는 것일 뿐 CVID와 의미가 차이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최근 두 개념을 혼용해 사용 중이다.
이미 북미 양국이 일정 수준의 합의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과 면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대안에 대해 만족한 합의, 만족한 결과를 이룩했다’고 한 점은 더이상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선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9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당시 김 위원장과 90분 간 회담하면서 비핵화 문제를 놓고 상당 부분 이견을 좁혔다는 소식도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핵문제의 일괄타결 원칙에 북한이 동의하고, 미국은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전 보장과 대북 적대시 정책철회 관련 중요한 약속이 이뤄졌는 지가 관심사다.
북미 정상회담이 내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가운데, 유력한 회담장소 후보로 꼽히는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전경. 사진/뉴시스
북미가 비핵화 문제에서 의견접근을 이룬다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도 빨라질 전망이다. 판문점 선언을 통해 기본 틀을 마련했지만, 이를 완성하는 것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담판에 달려있다. 1953년 체결 후 65년째 이어지고 있는 정전협정을 종전 선언을 거쳐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논의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트위터를 통해 “한국전쟁은 끝날 것”이라고 밝힌 건 총론적인 합의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총론적인 비핵화 합의 이후 북한의 이행과정 검증과 보상 문제 등 각론을 놓고 마찰을 빚을 가능성은 여전하다. 이를 놓고 양 정상이 협상 초반에 중대 양보를 서로 주고받는 ‘빅딜’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한반도 문제의 또다른 중요 당사국인 중국에 대한 이른바 ‘패싱’ 우려를 불식시켜 가고 있는 것도 우리로서는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중국 내에서는 한 때 판문점 선언 내용에 담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 적극 추진’ 대목을 놓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남북미 3국 중심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한중 두 나라가 긴밀히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해나갈 것”이라며 오해 불식에 나섰다.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기존에 유력하게 거론되던 판문점이 아닌 싱가포르로 결정된 것 또한 중국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준 측면이 있어 보인다. 워싱턴 외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시 주석이 북미 정상회담 기간 중 싱가포르를 방문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또 다른 북미 정상회담 후보지로 꼽히는 싱가포르 센토사 섬 내 리조트월드 센토사 야경.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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