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본사의 대리점에 대한 '갑질'을 근절하기 위해 매년 업종별 서면실태조사를 실시, 위법 혐의가 있을 경우 직권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올 하반기에는 지난해 분쟁조정 신청이 가장 많았던 의류업을 실태조사 대상으로 정해 들여다볼 계획이다.
또 공정위는 대리점주들이 단체를 구성해 본사의 불공정 행위에 대항할 수 있도록 대리점법에 대리점단체 구성권도 명문화하기로 했으며, 본사의 보복이 있을 경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해 엄벌할 방침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4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대리점 분야 불공정 관행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는 24일 본사와 대리점주 간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위해 이같은 내용의 '대리점 분야 불공정 관행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가맹, 대규모 유통, 하도급 분야에 이은 마지막 4대 갑을관계 근절대책이다. 앞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갑질 근절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제시하며 4대 갑을관계 분야 근절대책 발표를 약속한 바 있다.
대리점 거래는 영세한 규모의 중소유통업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분야다. 때문에 본사에 의한 불공정거래 행위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13년 국민적 공분을 산 남양유업 사건이 대표적이다. 남양유업은 본사 직원이 대리점에 물량을 떠넘기면서 갑질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이후 2015년 대리점법이 제정됐지만, 업계에서는 갑질 문제가 여전히 고질적인 관행으로 남아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공정위는 이같은 지적에 따라 지난해 처음으로 약 4800개 본사와 15만개 대리점을 대상으로 실태파악에 나섰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실태파악 결과를 바탕으로 본사의 거래관행을 개선하고 대리점주의 권익보호 방안을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면서 대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대책을 보면 우선 법 위반 혐의에 대한 적발 시스템을 강화했다. 공정위는 매년 업종별 서면실태조사를 실시해 거래관행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발굴하고, 문제가 있으면 직접 직권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올 하반기에는 분쟁이 가장 많은 의류업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또 대리점이 익명으로 본사의 법 위반 행위를 제보할 수 있는 익명제보센터를 만들고, 대리점분쟁조정협의회를 통해 확보된 분쟁조정 정보는 직권조사와 제도개선에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불공정 행위에 대한 제재도 강화된다. 현재 대리점법과 시행령이 담지 못한 금지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고시로 지정해 법 위반 행위를 적극적으로 적발해 나갈 방침이다. 고시에는 별개의 상품을 묶음으로만 공급해 대리점이 원하지 않는 상품까지 구입하게 하는 '구입강제', 판촉행사를 실시하면서 대리점에 과도한 비용을 분담시키는 '경제상 이익제공 강요' 등 세부 행위 유형이 담길 예정이다.
업종별로 대리점의 권익보호에 필요한 거래조건을 반영한 '표준대리점계약서' 보급도 확대한다. 특히 대리점에 안정적인 거래기간이 보장되도록 표준대리점계약서에 최소 3년 이상의 계약갱신요구권도 설정하기로 했다. 이 밖에 본사와 대리점간 비용 분담 비율을 사전에 설정하도록 하고, 인근에 신규 대리점을 개설할 경우 미리 통보하도록 규정했다.
이와 함께 대리점이 단체를 통해 본사의 불공정 행위에 대항할 수 있도록 대리점법에 대리점단체 구성권을 명문화하기로 했다. 본사가 대리점 단체 구성·가입·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법도 개정하며, 본사에게 피해를 입은 대리점들이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도 직접 법원에 해당 행위 중지를 청구할 수 있는 '사인의 금지 청구제'도 도입된다.
공정위는 본사가 제품 구입을 강제하거나 경제상 이익 강요 행위를 할 경우 피해액 보다 많은 액수를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적용할 방침이다. 또 피해 대리점이 손해배상 소송에서 손해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도록 법원의 자료 제출 명령권도 신설하기로 했다. 이는 기존 민사소송법상 자료 제출 명령권보다 강화된 것으로, 손해액 입증 등과 관련된 증거의 경우 사업자의 영업 비밀에 해당하더라도 법원이 열람 제한을 조건으로 제출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김상조 위원장은 "이번 대책을 계기로 갑을관계에서 비롯되는 대리점 분야의 불공정 관행이 개선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약자인 중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이라며 "법 개정이 필요한 과제들은 조속히 입법화될 수 있도록 국회 등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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