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문지훈 기자] 국내 은행들이 최근 동남아시아 진출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국가로의 쏠림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 데다 정부의 신(新)남방정책 등으로 국내 은행들이 현지 진출에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일부 국가에만 몰리는 쏠림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7일 은행권에 따르면 현재 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국내 4대 은행을 비롯해 농협은행과
기업은행(024110) 등 대다수 은행들이 동남아 지역 진출 및 현지 네트워크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허인 국민은행장을 비롯해 위성호 신한은행장,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이대훈 농협은행장, 김도진 기업은행장이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차 필리핀을 방문해 현지 네트워크를 비롯해 인근 국가의 영업망을 점검했다.
동남아 진출과 관련한 은행들의 성과도 주목받고 있다. 기업은행은 작년 11월 인도네시아 아그리스(Agris)은행과 조건부주식인수계약을 체결한데 이어 지난 2월에는 미트라니아가(Mitraniaga) 은행과 조건부 주식인수계약을 체결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을 가리지 않고 해외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국민은행 역시 현지 매물로 나온 은행의 유력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태다.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 17일 베트남 호치민과 하노이에 신한베트남은행 지점 4개를 추가 개설하며 현지 영업망을 총 30개로 확대했다.
국내 은행들의 이 같은 움직임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있는 것은 문재인정부가 신(新)남방정책을 펼치면서부터다. 국내 은행들은 문재인정부 출범 전부터 높은 경제성장률 전망 등을 바탕으로 동남아 금융시장의 문을 두드려왔다.
그러나 은행권에서는 동남아 지역 중심의 국내 은행 진출 전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국내 은행 모두 동남아 지역을 주요 진출국가로 꼽는 데다 일부 국가에는 대부분의 국내 은행들이 진출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베트남이다. 실제 현재 베트남에는 현지 외국계 은행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신한은행을 비롯해 국민은행,
우리은행(000030), KEB하나은행과 기업은행 등 국내 대형 은행 대부분이 진출한 상태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의 국가 역시 국내 은행 대부분이 진출한 지역이다. 현지 은행과의 경쟁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현지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되다보니 수익성도 예상보다 낮은 실정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A은행 관계자는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이 6~7%를 기록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수익이 많이 나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단기적 시각에서 동남아 일부 국가 진출에만 집중해 과당경쟁을 벌이는 것보다 1~2개 국가에서 성공한 뒤 이를 교두보로 삼아 주변국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5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연구원과 국제금융학회 공동 심포지엄에서 "주변국을 위주로 진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베트남 등과 같이 해외진출이 한 국가에 집중되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들이 지역·문화적 특성뿐만 아니라 성장가능성 등을 고려해 동남아를 주요 진출 지역으로 삼고 있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동남아 중에서도 일부 국가로만 몰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서 연구위원은 "호주 ANZ 은행의 경우 인접국으로서 경제적 교류가 많은 뉴질랜드를 핵심진출국으로 지정해 자리를 잡은 뒤 이후 인접한 태평양 군도 및 동남아시아로 네트워크를 확대했다"며 "여러 국가에 진출해 골고루 키우기보다는 1~2개 국가를 선택해 역량을 집중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환 인하대 교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 국가에 진출해 시장을 개척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시장이 형성돼 있고 다른 금융사가 진출해서 수익을 얻고 있는 국가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경향 때문"이라며 "국내 은행들의 해외 진출이 몇몇 국가에 집중돼 제살 깎아먹기가 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적인 시각에서 이미 검증된 시장만 볼 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금융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며 "우선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국내 은행들이 동남아시아 지역 진출에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일부 국가에만 몰리는 쏠림현상도 나타나고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7일 신한베트남은행의 4개 지점 개점식 행사에서 내외빈들이 축하 테이프 커팅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사진/신한은행
문지훈 기자 jhm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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