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나를 파괴할 권리, 나를 구할 국가
2026-05-06 06:00:00 2026-05-06 06:00:00
숙취에 대응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해장을 하지 않는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고통을 참는다. ‘한 잔만 더’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폭주했던 스스로를 자책하며, 이제는 진짜 술을 끊겠다고 결심한다. 숙취가 웬만큼 사라지면 배고픔이 오고, 반주(飯酒)와 함께 국밥을 말아 먹는다. 그 와중에도 몸속 니코틴 수치가 떨어지면 담배 한 대를 위해 후들거리는 다리로 난간을 붙잡고 옥상 흡연구역까지 기어 올라간다. 
 
주기적으로 집 안의 술을 전부 개수대에 버리고, 멀쩡한 담배를 꺾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한 달에 서너 번 금주 결심을 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 금연 결심을 한다. 결심의 횟수로만 따지면 국가대표급이다.
 
영국 의회가 지난 4월20일 현재 17세 이하 청소년은 성인이 된 뒤에도 영국 어디서든 담배를 구매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2009년 1월1일 이후 출생자에게는 담배 판매를 평생 금지한다. 강력한 담배 규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문제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중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라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다만 법을 위반해도 40만원 상당의 벌금을 부과할 뿐이라고 하니 실효성에는 다소 의문이 생긴다. 장(杖)을 치거나 구금(拘禁)을 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국가가 담배 사업으로부터 막대한 세수를 올리면서도, 그로 인한 질병의 책임은 부인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결단이 아닐 수 없다.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못 팔게 하고, 담뱃갑에 혐오감이 이는 흉한 이미지를 넣게 하는 식의 규제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우리도 언젠가는 영국과 같이 전면적 금지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음주 역시 마찬가지다. 둘 다 개인과 사회에 적지 않은 비용을 남긴다. 특히 술은 타인을 해하는 원인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음주운전을 없애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술을 안 파는 것이다. 차를 안 팔아도 되지만 차는 죄가 없다.
 
오늘은 꼭 공원을 한 바퀴 걷겠다고 결심했었다. 어제도, 그제도 그랬었다. 국가는 나에게 스마트워치를 나눠 주고 하루에 1만보 이상 걷지 않으면 장을 친다고 할 수도 있다. 내 건강을 염려하는 자애로운 후견이다. 국가는 나의 교양을 위해 하루 1시간의 독서를 강제할 수도 있고, 넷플릭스 시청을 금할 수도 있다. 나는 의지박약의 인간이어서 강제하지 않으면 내 결심은 성과가 없다. 
 
18세에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을 써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코카인 복용 및 소지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자신을 변호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국가는 담배 사업을 통해 막대한 세수를 올리면서도, 그로 인한 질병의 책임은 부인한다. 담뱃갑 면적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흡연 경고 그림. (사진=뉴시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골목마다 나던 쿰쿰한 냄새가 대마초의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마약 투약처럼 가해자 없는 범죄에 대한 형사정책적 논의는 고전적이고, 여전히 논쟁적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선언한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되, 다만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자기 결정권’의 본질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나를 파괴할 권리와 나를 구하기 위한 국가의 간섭 사이에 적정한 경계는 어디쯤일까.
 
나는 오늘도 술·담배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다, 어제처럼. 
 
천경득 변호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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