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빅테크들의 한국을 향한 메시지가 달라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K-콘텐츠 확산과 관광 활성화를, 구글은 고용 창출과 스타트업 생태계 기여를 강조한다. 한국 시장에서의 '공헌'을 전면에 내세우는 모습이다. 그러나 제도와 책임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세금, 망 이용, 규제 대응에서는 정반대의 태도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법인세 판결은 이러한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법원은 해외 법인을 실질적 서비스 제공 주체로 보고, 국내 법인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판단했다. 과세 당국이 넷플릭스 한국법인에 780억원 수준의 세금을 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687억원은 낼 필요가 없다고 봤다. 판결 자체는 존중돼야 하지만, 그 결과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국 이용자를 기반으로 수익이 발생함에도 과세와 책임은 해외로 이전되는 구조가 유지된다는 점이다. 구글 역시 비슷하다. 국내에서 막대한 트래픽과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세금과 비용 부담은 국내 기업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망 이용 대가 논쟁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이를 무역장벽으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매년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를 통해 한국의 망 이용 대가 정책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현실은 다르다. 국내에서는 네이버 등 토종 기업들이 망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반면, 글로벌 빅테크는 캐시 서버와 글로벌 계약 구조를 활용해 비용을 최소화해 왔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처럼 국내에서는 공정 경쟁과 비용 분담 문제로 제기되는 사안이 국제 무대에서는 차별과 무역장벽으로 재해석되며, 동일한 이슈가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 구조는 바뀌지 않는 것일까. 다국적 기업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유사한 갈등을 겪으며 대응 전략을 축적해 왔다. 실제로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 망 이용 대가 분쟁이 결국 비공개 합의로 마무리된 것도, 글로벌 판례를 남기지 않으려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정교하고, 전략적으로 각국을 상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국정감사에서 국내 법인을 불러 질타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실제 해결로 이어지기 어렵다. 빅테크를 상대할 외교·통상 전문가를 두고, 전략적으로 움직일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빅테크와의 협상을 전담할 범부처 차원의 전략과 전문성이 필요한 셈이다. 개별 사안을 쪼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데이터·인공지능(AI)까지 포괄하는 국가 차원의 접근이 요구되는 것이다. 빅테크의 이중적 태도를 지적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그들을 전략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문제는 원칙이 아니라 실행이다. 같은 시장에서 같은 이용자를 대상으로 사업한다면, 국적과 관계없이 동일한 책임이 부과돼야 한다는 원칙은 이미 충분히 공유돼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원칙을 현실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힘이다. 한국은 과연 그 준비가 돼 있는가, 지금은 무엇보다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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