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에서 택시를 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당신은 거스름돈으로 십중팔구 페소(Peso)가 아닌 팔소(Falso)를 받게 될 것이다.
팔소는 이 국가에서 은밀하게 통용되는 위조지폐다. 시내 중개상을 거쳐 택시부터 스트립 클럽, 카페, 환전소, 은행까지 흘러간다. 반값에 사 실제 화폐처럼 유통하는 거래 세력은 “큰 돈을 벌기에 이 만한 일이 없다”고 자부심까지 가진다.
인도판 할리우드(발리우드)라 불리는 뭄바이에는 사기꾼들이 넘실거린다. 공항에서 호텔까지의 이동요금으로 1000루피(89만원)를 요구하는 택시 기사들과 배우 지망생들의 꿈을 저당 잡고 700파운드(100만원)을 요구하는 가짜 영화 감독들. 하다못해 지나가는 사람들마저 협잡꾼들과 얽혀 제복을 입고 경찰 행세를 한다.
이 모든 일들은 런던 금융맨 코너 우드먼이 실제 체험한 ‘살아 움직이는 경제’다. 억대 연봉의 잘 나가는 이코노미스트였던 그는 숫자 놀음에 지쳐 세계 일주를 떠났고, 우리가 보지 못한 ‘세계 경제의 그늘’을 봤다. 세계 인구의 절반인 18억명이 종사하고 세계 50대 기업 수익 총계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지하 경제의 심연. 마약매매와 매춘, 도박, 절도 등 괴물 세계를 추적한 그의 이야기 ‘나는 세계 일주로 돈을 보았다’는 불편하지만 우리가 바로 봐야 할 세상의 진실들이다.
책에서 코드먼은 실제 관광객의 입장으로 세계 곳곳의 범죄 현장과 맞닥뜨린다. 그가 묘사하는 범죄자들의 눈빛은 세렝게티 대이동을 바라보는 사자들의 그것만큼이나 날카롭다.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서 그는 거액의 위험한 도박이라 불리는 ‘레즐데즐’의 내막을 찾아 나선다. 길거리 타로 점술사들과 술집 춤꾼들에게 물어 세인트 루이스 스트리트의 어느 건물 앞에 당도한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간 어두운 방 안에서는 야구방망이, AK-47 소총을 든 이들에게 포위된다. “용건이 뭐냐” 묻는 범죄 세력 앞에 그는 죽을 수도 있다는 용기로 레즐데즐의 실체를 묻는다. 잠시 뒤 범죄 세력이 탁자 앞에 놓는 건 6연발 권총과 총알 하나. 목숨과 거액의 돈을 맞바꾸는 게임의 실체를 깨달은 그는 돈만 지불하고 그 자리를 황급히 빠져 나온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팔소의 기원을 추적한다. 1980년대 위조지폐범이었던 헥토르 페르난데스와 접촉하고, 위조지폐를 다루는 범죄 현장에 잠입해 목숨을 걸고 질문을 던진다. 마약에 취한 범죄 세력은 의외로 코드먼에게 진실을 이야기한다.
“도시 모든 위조지폐의 유통을 장악하고 있으며 중앙은행 내부와 결탁해 잉크와 종이를 지원 받고 있다. 10만 페소(600만원) 정도는 하루면 찍어 낸다. 택시, 환전소, 은행까지 우리의 돈이 들어간다.”
인도 뭄바이에서는 배우 지망생처럼 연기하며 사기꾼들의 단계별 사기행각을 밝혀내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실제 소매치기범들의 범행 재연 장면을 눈 앞에서 요청하기도 한다. 그가 누비는 도시 중에는 영국 런던과 버밍엄 등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세계적인 도시도 적지 않다.
목숨을 담보로 그가 범죄 현장 취재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범죄가 세계 경제의 일부라는 사실을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서였다. 경찰의 머리를 총으로 쐈다며 낄낄거리는 아르헨티나의 위조지폐 갱단과 병적인 거짓말로 금품을 갈취하려는 뭄바이의 캐스팅 디렉터, 마약 중독에 휴대폰 갈취를 선택하는 런던의 절도범을 통해 세상의 실체를 바로 보기 위함이었다.
직접 발로 뛰고 공부한 그는 이제 세계 경제의 나머지 절반을 이해한다. “범죄는 산업이다. 다른 세계와 마찬가지로 경쟁과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된다.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조장하는 한, 훔치는 빈자가 있고 빼앗기는 부자가 있을 것이다. 안 그런가?”
'나는 세계일주로 돈을 보았다'. 사진/갤리온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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