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소설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쓰기의 전제조건이 재능이란 의견을 지속적으로 피력해왔다. 회고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에서는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연료에 빗대기도 한다.
2015년 리포트, 발표 원고 작성이 힘들다 토로하는 한 청년의 고민 상담에도 그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재능이었다.
"어느 정도까지는 연습으로 잘하게 되지만 기본적으로 타고 나야 합니다. 뭐 어쨌든 열심히 하세요."
그런데 하루키의 이 대답은 과연 적절했을까. 실용적 글쓰기에 관해 묻는 학생의 질문을 문학 창작의 잣대로 재단하고 무시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백승권씨 비즈니스 라이팅 강사는 신간 '보고서의 법칙'에서 모든 글쓰기를 일반화한 하루키의 시각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문학 글쓰기와 실용 글쓰기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하루키는 그것을 똑같은 문제로 본 겁니다. 글쓸기라고 다 같은 글쓰기가 아닌데 말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실용 글쓰기, 특히 보고서엔 명백한 법칙과 매뉴얼이 있다. 한마디로 '루틴의 세계'다. 자신 만의 시각 혹은 개성이 두드러지는 글쓰기들과는 시작점부터 달라야 한다. 그래서 시, 소설, 자서전을 쓰는 방식과 다를 수 밖에 없다. 글쓰기를 일반화한 하루키의 오류를 진작 꺼내드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보고서를 잘 쓰려면 ‘커스터마이징’을 잘 해야 한다. 수공업자들이 고객의 요구에 따라 제품을 만들듯 ‘맞춤 제작’ 능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표현적 글쓰기’가 아닌, 특정한 목적에 따라 특정한 인물과 소통을 해야하는 ‘소통적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시와 소설, 수필의 경우 특정 독자가 없지만, 보고서엔 분명한 독자가 있다. 보고서를 읽고 판단을 내릴 의사결정권자. 저자는 그 결정권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작성하면 보다 현명한 업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발생한 ‘기적’은 그 증거다. 10년 간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했던 평창유치위원단은 철저히 IOC 위원들의 입장에 서보기로 했다. ‘왜 동계올림픽은 하계올림픽만큼 많은 국가가 참여하지 못할까’
위원단은 많은 국가가 동계 스포츠를 즐길 환경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는 우리나라에 유소년 대상 동계 스포츠 보급 운동 ‘드림 프로그램’의 성과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계 올림픽만큼 많은 국가가 참여하길 바라는 IOC의 오랜 꿈이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이라는 문구에 담겼다. 저자가 보기엔 이 사례는 철저히 수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한 커스터마이징 전략의 승리다.
또 보고서는 짧을수록 좋다. 핵심만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다. 역시 의사 결정권자의 시간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눈앞에 닥친 시기에 총리에 취임한 윈스턴 처칠 역시 그랬다. 보고서의 핵심만 짧게 쓰라는 편지를 내각 구성원 모두에 전했다. 보고서는 핵심 포인트를 짚어 짧고 정확하게 써야 한다.
이 외에도 저자는 중복과 누락을 방지하기 위한 ‘대형마트식’ 분류와 카테고리 생성법, 독자가 용건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두괄식 접근법’, 문장 앞에 1, 2, 3과 같은 숫자나 I, II, III 같은 로마자를 써 글의 구조를 전체적으로 보이는 ‘개조식 접근법’ 등을 소개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잘 작성된 보고서와 잘못 작성된 보고서를 각각 모범, 실패 사례로 삼아 제시한다. 신문 칼럼 등 기본 텍스트를 제시해 그것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텍스트를 이용한 보고서 작성 연습’도 실었다. 실 사례와 저자의 첨삭 내용을 통해 더 효과적인 보고서 작성 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보고서의 법칙'. 사진/바다출판사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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