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이동이 이뤄지는 설 연휴 기간에는 소위 '밥상머리 민심'이라는 것이 형성된다. 평소 떨어져 지내던 가족이나 친지들이 오랜만에 만나 밥상에서 서로 안부를 물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일종의 '여론의 큰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종류의 대화에서 가끔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 정치부기자, 거기에 청와대를 출입하다보니 그래도 남들이 모르는 뭔가 아는 게 있고, 소위 '높은 분들'에게 본인의 힘든 사연을 전달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어린 시선이 무겁다. 그럴 땐 그냥 하소연을 묵묵히 듣는 것이 정답이다.
들어보면 안 힘든 사람이 없다. 일례로 자영업을 하는 지인은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아르바이트생 고용은 진작 포기하고 부부가 온종일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경기불황과 육아부담까지 어깨를 짓누른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기자보다 잘사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지인들마저 부동산 하락과 각종 세금폭탄에 힘들다며 울분을 토한다. 하루 3시간 걸려 출퇴근하는 '전세인생'인 기자로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한 사연들을 종합해보면 '지난 2년간 내 삶이 크게 긍정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경제, 특히 민생부분이 더욱 그렇다. 2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를 앞세워 정권을 잡았지만, 남북문제를 제외하고 크게 체감되는 변화가 없어 아쉽다는 평가다. 대통령 개인은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긴 한데, 국민들 손에 잡히는 것은 딱히 없어 아쉬움은 더욱 크다.
설 연휴를 마친 청와대에는 다양한 과제가 놓여있다. 당장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개최될 제2차 북미 정상회담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답방이 있다. 개각문제가 있으며, '혁신적 포용국가' 추진도 빼놓을 수 없는 이슈다.
다만 청와대가 한 가지만 잊지 않았으면 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형 이슈들에 최선을 다해 대응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의 큰 구조를 바꾸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소소한 '변화'를 만드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숨이 턱까지 차는 국민들에겐 소위 '큰 그림'보다 당장의 작은 변화가 더 소중할지 모른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기엔 발밑의 낭떠러지가 두렵다. 오늘도 국민들은 언제 '내 삶이 바뀔지' 기다리고 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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