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소설집 카스테라 속
<그러습니까
?기린입니다
>의 주인공 승일이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상업고등학교 학생이다
. 유난히 긴 여름방학 기간 승일이의 모든 시간은
'산수
'로 정리된다
. 한 푼이라도 더 받는 곳으로 가기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 한푼 한푼을 시간으로 환산해야 하는 하위 계층의 삶의 방식이 승일이의
'산수
'다
. 실제 친한 형에게 음료수를 사 건네는 것도
'몇 분
'이라는 시간으로 계산한다
. 당시 편의점 시급이
1000원 이었다고 하니 승일이가 산 음료수 한 잔은
'인생의 이십오분 쯤
?'
이 소설은 2004년 발표돼 그때로부터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상고에 다니던 승일이는 30대 중반쯤 돼 있을터. 그는 여전히 모든 시간을 산수로 환산하며 살고 있지는 않을까. 최저임금은 그사이 상당히 올라갔는데 휴일을 늘리거나 휴식시간을 교묘하게 늘리는 '꼼수' 때문에 그때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이는 현재 한국사회가 '최저임금' 덫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할 배가 출항했다. 지난 2년간 16.4%, 10.9% 오르며 '속도조절'의 힘이 실리는 현 상황에서 새로 진용을 갖춘 최저임금위원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날 위원장을 맡은 박준식 교수는 "최저임금 절대값을 봤을 때 지난 2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있었던 최저임금 인상수준이 다소 빨랐던 것은 어느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위원장 뿐 아니라 최저임금 결정의 키를 쥘 나머지 공익위원들 또한 과거 발언과 연구자료 등을 봤을 때 최저임금 신중론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게다가 최근 문재인 대통령도 KBS와 대담에서 "2년간 꽤 가파르게 인상됐고 긍정적인 측면도 많지만 부담을 주는 부분도 적지 않다"며 "최저임금위원회가 그런 부분을 감안해서 우리 경제가 수용할 수 있는 적정선으로 판단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한바 있다. '속도조절'이 강하게 읽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간 최저임금 인상에도 임금상승 효과를 보지 못한 노동자들도 많다. 아르바이트생 대부분은 여전히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고, 일각에서는 주휴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주당 근무시간을 15시간이 되지 않도록 해 초단기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문제도 생기고 있다. 여전히 자신만의 산수를 계산하며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노동자가 많은 것이다.
이제 최저임금 결정까지 한달 반쯤 남았다. 최저임금 인상폭 만큼 중요한 것은 최저임금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여부다. 최저임금이 오르더라도 부담을 덜 느낄 수 있도록 소상공인에게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대책을 마련해준다면 '꼼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속도는 조절하더라도 최저임금 1만원 시대에 가는 방향에 노동자가 서있을 것이고, 조금은 숨통트이는 삶의 방향으로 진전될 수 있게 된다. 최저임금 상승이 소득분배 격차를 완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늘 첫 회의를 시작한 최저임금위원회가 근로자 생계비·유사근로자 임금·노동생산성·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결정하겠지만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올바른 방향성을 갖고 고민하길 바란다. 최저임금 인상이 누구에게나 조금이라도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말이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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