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태풍조차 '블랙 메탈' 앞에선 미풍에 불과했다. 그들의 무한한 파괴력을 눈 앞에서 몸소 체감한 날이었다.
제13호 태풍 '링링'이 한반도에 상륙했던 지난달 7일 저녁 홍대 프리즘홀. 태풍보다도 무시한 괴력의 이들이 출격을 준비 중이었다. 징 박은 가죽 재킷에 하얀 얼굴 분장을 한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DARK MIRROR OV TRAGEDY). 무대 위, 아래를 활발히 오가며 음향 조율하던 그들을 관객들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는 세계 무대에서 먼저 알아본 팀. 국내 유일의 '심포닉 블랙 메탈(Symphonic Black Metal)' 밴드. 고전적 클래식 음악과 록, 메탈 사운드를 결합한 이들의 음악은 영국, 미국, 유럽 등 음악 선진국에서 많은 주목의 대상이 돼 왔다. 국내에선 올해 2월 말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메탈&하드코어 부문을 수상하며 성과를 뒤늦게 인정받았다.
국내 유일의 '심포니 블랙메탈'을 추구하는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들에 따르면 심포닉 블랙 메탈의 국내적 어려움은 음악적 자원 확보에 있다. 음악 특성상 클래식 작곡 이해가 필요하지만 한국에선 이를 다루는 오케스트레이터 등 우수자원이 뮤지컬, 사운드트랙 등의 분야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이들 역시 올해 발매한 4집 외 1~3집을 해외에서 녹음하고 공연하는 등 자생적으로 해결해오고 있다. 열악한 국내 여건은 일본, 중국 등 가까운 아시아 국가와의 협력으로 해결한다.
이날 '다운폴 페스트(DOWNFALL FEST)' 역시 이런 일환으로 꾸며진 행사. 밴드는 아시아 전역에 '블랙 메탈' 씬을 활성화시키겠단 취지 아래 이 행사를 해마다 개최해오고 있다. 올해는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씨리얼 씬(ETHEREAL SIN), 중국 상해에서 활동하는 스크리밍 세이비어(SCREAMING SAVIOR)가 릴레이식으로 공연을 꾸몄다.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가 이날 무대에 오른 건 저녁 6시55분경. 영화 음악 같은 드라마틱한 전주와 함께 한 명씩 검은 옷을 치렁이며 등장했다. 다음엔 긴 머리를 360도 휘날리며 가속 행진. 드럼과 베이스가 천둥처럼 비트를 울리고 전자기타 2대가 사운드를 수직으로 내려 꽂기 시작했다. 목을 긁는 보컬의 그로울링이 태풍도 집어 삼킬 태세로 맹렬히 전진했다. 포효.
무대 위 연단을 일제히 오르내릴 때는 흡사 케이팝 아이돌. 칼군무 동작처럼 미리 계획 하에 짜 맞춘 일련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연주를 더 동적으로 느끼게 했다.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씨리얼 씬(ETHEREAL SIN).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들 후에 오른 이써리얼 씬 역시 일본 메탈 시장의 개성과 파괴력을 보여줬다. “세계를 돌고 있는데 한국이 늘 우리에게 첫째였다. 참이슬은 최고”라 하자 관객들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번개처럼 몰아치는 사운드는 곧 중국 스크리밍 세이비어로 이어졌다.
브이넥 기타를 하늘 위로 치켜든 이날, 블랙 메탈은 태풍을 집어삼켰다. 모두에게 어둠 속 피, 땀으로 빚어지는 블랙 메탈의 시대가 오시압.
※이 기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2019 인디음악 생태계 활성화 사업: 서울라이브' 공연 평가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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