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하루 평균 20번 정도 불편을 겪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 소비자가 기업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서비스 상의 불편'(68%, 미국품질관리학회)이다. 제품의 품질(14%)이나 경쟁사(9%), 지인의 권유(5%) 등의 이유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기업들이 고객서비스(CS)센터 등을 운영하며 품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불편을 느끼더라도 이를 드러내는 소비자가 많지 않은데, 조사에 따르면 약 6%의 고객만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불평·불만을 표출했다.
닛픽은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 경험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불편함'을 운영하고 있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가치 있는 불편 정보들을 쉽고 편하게 또 재미있게 기록하는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하루 한 가지 불편 주제가 정해지면,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 경험하고 느낀 불편함을 적는다. 그렇게 쌓인 불편 정보를 통해 닛픽은 불편 가치를 측정하고 이용자들에게 리워드(보상)를 제공하고 있다. 불편 가치는 앱 내에서 가치 측정 알고리즘을 통해 다른 이용자들의 추천수나 영수증 등의 자료, 정보의 디테일 등을 반영해 측정한다.
지난해 8월 서비스를 론칭한 불편함은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이용자들을 끌어들였다. 현재 누적 앱 다운로드 7만건, 이용자수 5만명을 넘어섰고, 누적 불편건수는 50만여건으로, 하루 평균 1500여건의 불편 경험담이 올라오고 있다. 자연스럽게 쌓인 불편 정보들은 가공되고, 닛픽은 이를 필요로 하는 기관과 기업들에 판매한다. 지금까지 축적된 수십만건의 불편 정보를 구매할 수 있는 오픈데이터마켓 '한국불편데이터마켓'도 운영 중이다. 불편 정보들을 분석하고 정리한 리포트를 발행하고, 실제 이용자들이 작성한 글과 함께 인구통계학 자료, 감성분석과 불편레벨 등을 포함한 데이터 원본을 제공하기도 한다.
닛픽은 지난 5월부터 카카오 자회사 그라운드X와 협력해 블록체인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사진/닛픽
기업이나 컨설팅 업체들의 의뢰도 있다. 대기업과 같이 별도의 CS센터를 운영하기 힘든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 이같은 불편 정보들은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캐리어나 다이어리 제작업체들이 기존 제품의 불편들을 조사하기 위해 닛픽과 협업했다. 또 재밌는 주제들에 대한 불평 글들이 쌓이다 보니 콘텐츠 제작사들이 이를 활용하기 위해 먼저 연락해오는 경우도 있다. 가령 '라면의 불편함', '조별과제의 어려움' 등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불편들이 콘텐츠 소재로 사용된 사례다.
닛픽은 오는 11월 중으로 서비스를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먼저 기존 모바일 앱을 비앱(BApp,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으로 전환한다. 이를 위해서 지난 5월부터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와 협력해 비앱 개발을 진행했다. 불편 정보가 네거티브성 데이터이다 보니 이용자의 익명성을 보장하면서도 정보가 가진 무결성, 신뢰성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게 됐다. 이용자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기존 리워드 시스템도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 이코노미로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이용자들이 불편 주제를 좀 더 자유롭게 정해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편하고, 불편뿐 아니라 개선점도 함께 제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지역 상권에 전문적인 컨설팅을 제공하는 경우라면, 실제 동네에 사는 주민들이 상점 주인에게 평소 말하고 싶었던 개선점들을 전달하는 창구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닛픽의 슬로건("당신의 불편을 삽니다")에 "우리동네 백종원을 모십니다"라는 슬로건이 추가된다. 닛픽은 이용자들의 불편 정보를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이 보다 잘 전달 받도록 중개하고, 생활 속 불편이 편리로 바뀌기 위한 플랫폼 역할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다음은 김준영 닛픽 대표와의 일문일답.
모바일 앱 '불편함'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는 김준영 닛픽 대표. 사진/닛픽
불편 경험을 산다는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대학교 재학 중에 노량진에서 행정고시를 준비한 적이 있다. 스터디를 했는데, 새로 온 사람들을 위해 근처 식당 중 맛없는 집을 내부적으로 공유했다. 일종의 뒷담화를 하는 거라 재밌기도 해서, 소셜미디어에 비공개로 단체방을 만들고 방장을 했다. 그러다 단체방 인원이 100여명으로 늘어나고, 어떻게 아셨는지 식당 사장님들도 관심을 가지셨다. 평판에 대해 물어보시고, 고칠 점을 알려주면 반영하겠다고 하시더라. 네거티브한 정보들이 포지티브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소비자들의 불편 데이터를 공급자에게 전달하면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라 판단했다.
현재 카이스트 재학 중인데.
고시에 떨어지고 학교 졸업 후 직장을 잠시 다녔다. 그러다 창업을 결심하면서 카이스트 사회적기업가(SE) MBA 과정에 입학했고, 창업 준비를 병행했다. 그전에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16주간 창업 교육 프로그램을 들었는데, 거기서 닛픽을 함께 하고 있는 팀 멤버들도 만났다. 당시에는 특별한 창업 아이템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창업을 준비하면서 고시공부 당시 경험을 떠올렸다. 카이스트에서는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실제 사업으로 구현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이용자들이 작성한 불편 데이터들을 정제하고 가공해서 기관이나 기업들에게 제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데이터가 갖춰야 하는 조건들에 대해 고민하고 보완할 수 있는 기회도 됐다.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게 된 계기는.
불편 경험과 같은 네거티브 데이터들의 신뢰성이 중요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올해 초부터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앱 개발을 진행했는데, 그라운드X와 협업하게 되면서 클레이튼 메인넷을 활용해 비앱을 개발하게 됐다. 지난 3월부터 클레이튼 기반으로 데이터 마이그레이션 작업을 진행했고, 11월 중 새로운 비앱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불편 정보를 다루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직업병을 겪는 것 같다. 하루 종일 불편 정보만 접하다 보니 좀 우울해지는 것 같은 직업병이다. 하루 1500~2000여건을 처리해야 하는 담당 직원이 가끔 고통을 호소한다. 또 우리 서비스에 대한 개선사항들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편이다. 불편뿐 아니라 개선점을 제시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아 이번 업데이트에서 관련 내용들을 많이 반영했다. "우리동네 백종원을 모십니다"라는 슬로건으로, 백종원이 골목식당에서 가이드를 주는 것과 같이 지역 주민이 직접 동네 상점들에 대해 개선점들을 알려주는 서비스다. 지역 식당이나 소상공인들은 마땅한 컨설팅을 받기 힘들고 폐업률도 높은 편인데, 이들에게 유용할 서비스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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