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프로그램이 재밌다고 소문나서 근처 아파트도 같이 하자네요. 돈 내고 듣는 주민센터 문화강좌보다 프로그램이 훨씬 나아요.”
어느덧 쌀쌀한 날씨가 익숙해진 지난 20일 오후 서울 양천구의 현대아파트 북까페에선 반상회날도 아닌데 70살은 족히 넘었을 어르신 10명이 모여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냥 주민센터에 흔히 있는 노래교실처럼 성인가요에 맞춰 춤추는 모습처럼 보였지만 이내 노래가 끝나자 안옥경 강사가 “몸 좀 따뜻해지셨어요?”라고 묻더니 교재를 펴고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근력운동 순서 기억하시나요”라는 안 강사의 물음에 이내 어르신들은 의자를 뒤로 쭉 빼고 앉아 양팔과 양다리를 앞으로 펴고 힘을 주기 시작했다. 성인들에겐 어렵지 않은 동작이지만 근력이 부족한 어르신 중 몇몇은 다리를 온전히 펴지 못하거나 몇 초 버티지 못했다. 이어 한 쪽 다리로만 서기도 하고, 뒷꿈치로만 서기도 하며 제법 어려운 동작들이 차례로 이어졌다.
안 강사는 어르신 사이를 다니며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자세를 교정해주고 올바른 운동법을 알려줬다. 난이도가 높은 기마자세부터 하나 둘 포기하는 어르신이 늘었고, 안 강사는 “무리하지 말고 대신 책상이나 의자에 의지해서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해보는게 중요하다”고 격려했다. 어르신들은 “땀이 다 난다”며 기분 좋은 성취감에 한 동작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크게 치며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안 강사는 노인낙상 예방 전문 사회적기업인 해피에이징 소속으로 같이살림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어르신돌봄 낙상 예방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단순히 교육하는데 그치지 않고 개별 가정을 방문해 낙상 위험요소를 관리해주고, 전체 교육 전후로 신체변화도 확인할 수 있다. 홀몸어르신이 많아 겨울철 집에만 있을 어르신들이 서로 어울리며 유대감이 좋아지는 건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다. 현대아파트에선 어르신돌봄 외에도 놀이배움터·요리교실·과학교실 등의 어린이돌봄, 건강마사지·냅킨아트 등의 주민문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지난 20일 서울 양천구 현대아파트 북카페에서 어르신들이 낙상예방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서울시의 같이살림 프로젝트는 돌봄, 먹거리, 환경, 에너지, 건강, 여가문화 등 공동주택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고민거리들을 사회적기업들과 연결해 해결한다. 천편일률적으로 사업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4차례 이상 주민 워크숍을 가져 각 공동주택들이 생활 속 문제를 발굴하고 아이디어를 모아 프로그램으로 만든다. 올해 서울 11개 자치구에서 20개 아파트 단지가 참여하고 있다.
실제 얘기를 들어보면 공동주택마다 갖고있는 고민들은 비슷하면서도 다양하다. 강동구 리엔파크 3단지는 아이들 돌봄과 안전한 먹거리가 문제였다.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여기에 맞는 사회적기업 놀래와 한살림을 연결해 돌봄교사 교육과 건강강식을 제공했다. 단지 내 SH작은도서관 운영시간이 끝나는 평일 오후 6~9시 평균 20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23일엔 한살림과 함께 주민들이 모여 김장도 담갔다.
1995년 만들어진 노원구 한신아파트 주민들은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없어 늘 아쉬웠다. 주민들은 방치된 놀이터 공간을 활용해 어린이뿐만 아니라 많은 주민들이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뜻을 모았다. 이는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놀이터와 텃밭’으로 이어졌고 협동조합 마을공방 사이와 다른 지역공방들의 도움을 받아 주민들 스스로 야외공간을 디자인하며 목공교실에 참여해 야외공간에 놓을 가구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다.
한신아파트와는 또 달리 성북구 돈암코오롱하늘채에선 단지 내 공용커뮤니티공간이 운영주체 없이 방치된 상태였다. 30~40대 경력보유여성들이 주축이 돼 만든 ‘라온하제’는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아이디어들을 같이살림 프로젝트를 만나 정리해나갔다. 지난 1일부터 임시로 문 연 주민카페는 바리스타 교육을 진행 중이며, 쿠킹과 한과 등 주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내달부터 정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아파트마다 3년까지 참여 가능한 같이살림 프로젝트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최우선으로 하고 잇따. 전문성을 가진 사회적기업들이 프로젝트를 도우면서 주민들은 단지 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을 하게 되며, 여기서 두각을 나타내는 주민들은 보조강사 등으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맡는다. 아파트마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모델을 찾을 경우 주민들이 스스로 운영하는 마을기업으로도 발전 가능하다.
판로를 찾기 어렵고 시장 개척이 힘든 사회적기업들에게도 실제 자신들의 능력을 구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분야별로 사회적경제조직 풀을 조직햇으며, 주민 수요에 따라 알맞은 곳을 추가로 연결하기도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회적경제는 아직 덜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 서울시민의 62%가 사는 공동주택과 연결하면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지역에도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서울 양천구 현대아파트 프로그램실에서 어린이들이 과학교실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진규 온라인뉴스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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