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의혹 관련한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된 삼성 임직원 8명 전원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삼성 측이 그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사안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과 연계됐다는 의혹을 받는 만큼 앞으로 경영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소병석)는 9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관련해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삼바·삼성바이오에피스 임직원 8명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유죄 이유로 증거 인멸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법원은 "증거를 땅바닥에 묻는 등 증거 인멸 과정에서 이뤄진 범행 수법과 그 죄질이 불량하다.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은닉으로 사회에 충격을 줬다"며 "피고인들 주장처럼 불법적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사 지시를 맹목적으로 수행하는 문화라면 세계적인 기업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게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업 문화 형성에 피고인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반추해야 한다"고 꾸짖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5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환영만찬이 열린 부산 힐튼호텔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환영사를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법원은 검찰의 분식회계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선고를 강행한 이유도 설명했다. 그만큼 혐의점이 뚜렷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선고하면서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분식회계 의혹 등은 불리한 양형요소로 고려하지 않으려고 했다. 따라서 분식회계 혐의 선고 전임에도 선고하는 것"이라며 "오로지 증거를 인멸하고 은닉해 사법 기능 방해를 야기했다는 혐의점 만을 고려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유죄 판결로 본류인 검찰의 삼바 분식회계 수사에도 한층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본류는 아니지만 큰 테두리 안에서 분식회계 관련 법원의 첫 판단이었다. 그간 검찰은 삼성의 증거인멸과 분식회계,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연계돼 있다는 주장을 펼쳐왔는데 일단 증거인멸 부분에서 유죄를 인정받으며 첫 단추를 제대로 뀄다. 1년 넘게 침체돼 있던 분식회계 수사에도 활기가 띨 전망이다.
삼바 분식회계 수사 도중 삼바 등 증거인멸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한 검찰은 이들이 삼바 분식회계 관련 검찰 조사가 예상되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과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 작업 간 연결고리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대대적인 증거인멸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실제로 삼바·에피스는 수십테라바이트에 달하는 공용서버를 공장 마룻바닥·직원 자택에 숨기고 직원 휴대폰과 노트북에 JY(이재용), 합병, 미전실 등 특정 검색어를 입력해 대대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밝혀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된 증거 인멸 지시 혐의를 받는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운영담당 백모(왼쪽부터) 상무, 삼성바이오에피스 경영지원실장 양모 상무,삼성전자 정보보호센터 보안선진화 TF 서모 상무가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때문에 검찰은 올해 증거인멸 수사 과정 내내 "분식회계 관련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다면 법원에서 증거인멸 관련 압수수색 영장도 발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삼바 증거인멸과 분식회계 의혹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기조는 법정 단계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검찰은 9월 열린 삼바 증거인멸 1회 공판 당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4조5000억원대 삼바 분식회계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 비율을 만들기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 삼바와 삼바의 자회사인 에피스의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분식회계했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듯이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을 진행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달 열린 파기환송심 2회 공판에서 삼바 분식회계 및 증거인멸 관련 검찰 수사 자료를 재판 증거로 제출하겠다며 이를 토대로 이 부회장의 승계 현안 존재를 증명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삼바 분식회계 및 증거인멸 관련 수사기록은 현재 공판 중인 이 사건과 관련 없는 전혀 별개의 사건으로 증거 요건을 갖추지 못해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은 이번 판결에 대해 따로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선고 결과에 대해 따로 입장이 없다"고만 밝혔고 삼바 관계자 역시 "선고 결과에 대해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 서초사옥에 휘날리는 삼성 깃발. 사진/뉴시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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