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코로나19가 세계적인 감염병으로 번지는 ‘팬데믹’ 단계로 접어들면서 증시가 하락하자 상장기업들이 자사주 취득에 나서고 있다. 주가를 안정시켜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전략인데, 오너 기업의 경우 보유 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방어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금융당국도 증권시장 폭락을 막기 위해 자사주 매입 제한을 완화한 만큼 이런 움직임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17일 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기업들의 자사주 취득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동국제강은 지난 11일 이사회를 열어 오는 6월12일까지 200만주(80억원 규모)를 매입키로 결의했고, 대한해운도 전날 40만1606주(50억원 규모)를 추가 취득키로 했다고 공시했다. 최근 일주일 새 70여곳의 상장사가 이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기를 더 넓히면 앞서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 달 6일 이사회에서 창사 이후 처음으로 48만8000주(1293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을 결의한 바 있다.
기업들이 밝힌 자사주 취득 목적은 ‘주가 안정과 주주 가치 제고’다. 특히 김칠봉 대한해운 부회장은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주식시장의 불안감 증대 및 하락에 따른 주가 안정화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조치”라면서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회사의 본질 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여파로 증시가 폭락하면서 회사 주식 가치가 저평가 됐다는 판단이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처음 확인된 1월11일부터 중국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던 2월 중순까지 주요국 증시는 소폭 하락 후 반등해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중국 이외 국가로 확산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한 하락이 나타나고 있다. 2월20일부터 3월13일까지 17거래일 동안, 미국 -20%, 일본 -26%, 독일 -33%, 프랑스 -33%, 이탈리아 -3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자료 및 설명/자본시장연구원 '코로나19의 주식시장에 대한 영향 평가' 중 발췌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코로나19의 주식시장에 대한 영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주식시장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약 20% 하락했다. 특히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유가 하락이 나타난 시점 이후(2월19일~3월13일) 코로나 확산에 따른 △중국 경기 위축 가능성 △글로벌 경기 위축 가능성 △국제 유가 급락 요인에 대한 민감도가 큰 업종의 하락률이 두드러졌다는 분석이다. 조선·해운·철강은 모두 세 요인에 대한 민감도가 크다.
김 연구위원은 “코로나 발생 이후 국내 주가지수 하락은 외국인 매도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13일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1조5000억원을 순매도했다”며 “특히 주요국 주식시장의 하락이 본격화된 시기 외국인 순매도는 △중국 △글로벌 △유가 요인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업종에 집중된 것으로 확인된다”고 짚었다.
이런 시장 상황에 따라 금융 당국도 지난 13일부터 6개월간 상장회사가 자기주식을 직접 취득할 경우 취득신고 주식 수 전체를 당일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자사주 취득 제한을 대폭 완화키로 했다. 자사주 매입은 통상 주식가치를 높여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인식되는데, 최근처럼 주가가 많이 떨어진 경우 주가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인위적 주가 조작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았지만 하락폭이 커지자 규제를 일시 완화한 것이다.
지난 13일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1조5000억원을 순매도했는데, 누적순매도 추이는 KOSPI 지수의 움직임과 매우 유사한 패턴을 보여준다. 국내 주가지수 하락이 외국인 매도에 의해 주도됐다고 볼 수 있는 근거다. 특히 주요국 주식시장의 하락이 본격화한 시기 외국인 순매도는 △중국경기 위축 가능성 △글로벌경기 위축 가능성 △국제유가 요인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업종에 집중된 것으로 확인된다. 자료 및 설명/자본시장연구원 '코로나19의 주식시장에 대한 영향 평가' 중 발췌
이에 당분간 상장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움직임은 지속될 전망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증시 폭락을 막기 위해 정부도 자사주 매입을 권장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은 주가 폭락 방지 목적도 있지만 사실 오너 있는 기업은 지분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이때다’ 하고 사들이는 측면도 있다”면서 “더 많은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지주와 동국제강, 대한해운은 모두 ‘오너기업’이기도 하다.
다만 김 연구위원은 “(금융당국도) 지금 시기가 시기인만큼 자사주 매입을 할 수 있는 기업은 좀 신속하게 해서 주가하락을 막는 효과를 볼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인데, 위기가 더 심각해지면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을 생각할 여력이 없을 거다. 정말 글로벌 경제위기가 되면 ‘버티는 게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 돈을 회사 유지에 써야 하게 될 것”이라며 “그나마 배당을 줄 여력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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