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유라 기자] 세계 3위의 '조선 강국'인 일본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자국발주 물량만 앞세워 일감을 확보하다 보니 발주시장 침체에 한계를 드러낸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조선사가 자생력이 있어야만 위기 속에서 기회를 노릴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셈이다.
16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본 조선사들은 사업구조 재편에 한창이다. 일본 대형 조선사인 JMU(재팬마린유나이티드)는 연초부터 상선 사업 철수 계획을 밝혔다. JMU 마이즈루조선소의 신조선 사업을 내년 상반기 이후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수주부진에 따른 실적 악화가 원인이다.
또 다른 조선사인 미쓰비시중공업은 LNG(액화천연가스)선, LPG(액화석유가스)선 등을 건조했던 고야기 공장 매각에 나섰다. 이곳은 지난 4년간 신조수주가 없었다. 사실상 공장 매각은 부진한 가스운반선 사업을 정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도 조선업 살리기에 나섰다. 일본 선사가 해외에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하면 일본정책투자은행(DBJ)이 SPC에 대출을 해주는 민간은행에게 공적보증을 서준다. 국제협력은행(JBIC)은 직접 대출하는 정부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 조달을 도모한다.
JMU 마이즈루조선소 전경. 사진/JMU 홈페이지 갈무리
하지만 일본 정부의 이러한 노력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설비 노후화로 생산력은 떨어진데다 기술력도 뒤쳐졌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선박 효율화, 배기가스 저감 능력이 가장 중요한데, 일본은 이러한 능력이 부족하다"며 "일본 정부가 지원한다면 일정 수준의 일감은 확보하겠지만 과거와 같이 경쟁국을 압도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일감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일본조선공업협회에 따르면 수주잔량은 작년 말 2255만톤(GT)에서 올 상반기 1962만톤으로 6개월 사이 2000만톤 아래로 떨여졌다. 한국은 3640만톤, 중국 5310만톤이며 주로 크루즈선를 건조하는 유럽은 1038만CGT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수주성적도 처참하다. 8월에는 신조선 수주가 한척도 없었다. 23척을 수주한 한국과 대조적이다. 일본이 어쩌다 이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업계는 일본이 오로지 자국발주에만 매달렸던 게 이러한 상황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7월 말 발주량은 17억달러(51척)로 전년 동기 대비 69% 감소했다. 자국발주 물량이 대부분인 일본 조선사는 타격이 클 수 밖에 없다. 사실 국가별 발주량 감소세는 한국이 84%로 더 크다. 하지만 국내 선주들은 주로 중국에 선박을 발주한다. 한국 조선사의 주 고객은 유럽 등 해외 선주이기 때문에 한국 발주 감소세는 큰 의미가 없다. 앞서 5월만 하더라도 한국이 수주한 23만CGT(8척)는 모두 국내가 아닌 유럽 및 아시아 선주로부터 수주한 일감이었다.
이처럼 수주가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의 수주실적이 더욱 눈에 띈다. 자국발주에 의지하지 않고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 덕분이다. 기술개발로 고객 만족도를 높이면서 자체적인 영업력을 확대해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애초에 국내엔 자국발주 물량이 없었다"며 "이러한 점 때문에 한국 조선업계가 성장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기술개발 노력과 영업력 확대를 통해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유라 기자 cyoora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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