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산재’ 무방비 노출된 라이더들
라이더 85%는 “폭염 시에도 근무한다”
기후실업급여 등 사회적 안전망 시급
2024-08-07 15:54:10 2024-08-07 17:06:04
 
 
[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전국적인 폭염이 계속되면서 온열질환 피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뜨거운 도로 위를 달리는 배달 라이더에게도 여름철 폭염 피해는 심각합니다. 폭염이나 폭우 등 기상이 악화되면 오히려 배달 수요는 증가해 라이더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도 증가합니다. 배달 라이더들은 나날이 혹독해져가는 기후 조건 속에서 안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는 7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과 사고에 노출된 배달 라이더들에 대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이들은 “장마 후 폭염 상황이 계속되고 온열질환을 겪는 것으로 의심되는 라이더들이 다수 있지만, 플랫폼사는 생수쿠폰 발송과 같은 이벤트를 진행할 뿐이고 고용노동부도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습니다.
 
라이더들은 폭염 시 운임비가 인상되기 때문에 몸이 좋지 않아도 이를 견디고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뜨거운 햇빛과 아스팔트 복사열, 차량 열기를 견디고 보호장비까지 착용한 상태에서 라이더들은 폭염에 취약한 상황입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가 7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라이더유니온이 전날 조합원과 배달 노동자 81명을 대상으로 한 긴급 실태조사에서 응답자 85%는 폭염 시에도 근무한다고 답변했습니다. 폭염 상황에서 근무할 때 두통과 어지러움·근육경련 등의 온열질환 증상을 느꼈다는 응답은 96.3%에 달했습니다. 증상을 느낀 경우 대처 방법에 대해 ‘즉시 근무를 멈춘다’는 응답은 7.7%, ‘잠시 휴식하고 다시 근무한다’는 응답은 76.9%였습니다. 15.4%는 ‘쉬지 않고 근무를 계속한다’고 답했습니다.
 
라이더유니온은 파라메트릭 보험과 유사한 ‘기후실업급여’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파라메트릭 보험은 기존의 보험과 달리 손실을 입증할 필요 없고, 사전에 정해진 조건만 충족되면 자동으로 보상을 해주는 방식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기후실업급여 제도를 도입해 기후재난으로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때 자동으로 급여를 지급해서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호해야 한다는 겁니다.
 
폭염과 폭우 상황 속에서 플랫폼사들은 추가 배달운임을 제공하고 프로모션을 진행합니다. 그러면 배달 라이더들도 사고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를 내달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기후실업급여와 같은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휴업급여도 최저임금액보다 낮아”
 
구교현 라이더유니온지부장은 “일정 온도 이상의 폭염이나 일정 강수량 이상의 폭우가 발생할 경우, 근무가 일시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작업을 중지하고 해당 시간 동안 고용보험으로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노동자들이 기후재난 속에서도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간이쉼터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배달업종에는 상시근로자가 2명 이상만 근무해도 휴게시설 설치 의무가 부과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배달 라이더는 특수고용 노동자들로 법정 근로자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플랫폼사들에 휴게시설 설치 의무도 부과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라이더유니온은 “무려 30만명이 라이더로 등록돼 있는 배달의민족에는 쉼터 설치 의무가 없다”며 “법적 제도 정비와 함께 수십만명이 일하는 배민과 쿠팡 등 플랫폼사가 적어도 지자체별로 1개소 이상의 쉼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인근 거리에서 라이더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들은 또 “라이더들이 사고를 다수 겪고 있지만 산재보험을 포함한 4대 보험이 상당히 부실한 상태”라며 “산재보험 휴업급여는 최대 최저임금 절반으로 삭감됐고, 노동자가 일을 못하는 상황에도 휴업급여 인정을 하지 않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습니다. 이어 “고용보험은 여전히 수혜를 받은 라이더가 없다”며 “건강보험은 높은 보험료를 부담하고, 국민연금은 비용 부담으로 인해 상당수가 미가입 상태로 확인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라이더유니온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86%가 사고 시 최저임금보다 낮은 하루 8만원 이하의 휴업급여를 받았습니다. 최저임금보다 높은 금액을 지급받은 응답자는 13% 수준이었습니다. 배달 노동자의 휴업급여는 운임비에서 경비율을 제외한 금액을 소득으로 잡고 여기서 다시 70%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책정됩니다. 이에 휴업급여가 최저임금액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고 라이더유니온은 설명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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