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혼란에 재계도 '어수선'
"대통령 돌발행동, 산업 불확실성 커져"
"식물정부, '트럼프 리스크' 협상력 의문"
삼성·현대차·LG 등 내년 사업계획회의…안갯속 정국 비상태세
2024-12-08 11:44:51 2024-12-10 17:09:59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부결에 재계는 "불확실성이 더 깊어졌으며 경제 상황 관리가 더욱 절실해졌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연말 인사를 통해 조직 전열 재정비를 마친 재계는 내년도 사업계획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 등 국내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한 치 앞을 모를 정치 리스크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8일 재계에 따르면 탄핵 부결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 고조됐다고 보고, 산업계에 부정적 여파에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국회는 전날(7일)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나섰지만, 국민의힘의 표결 불참에 따른 의결 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이 선언됐습니다.
 
야권이 탄핵안이 부결되더라도 임시국회에서 탄핵 재추진을 예고한 만큼, 재계는 '포스트 계엄' 국면이 낳을 경제적 리스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정국이 탄핵 블랙홀로 급격히 빠져들면서 기업들은 신규 투자계획은 고사하고 기존 계획마저 보류할 우려가 커졌습니다. 무역·통상 등 산업 근간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대해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투표 불성립'을 선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경기침체에 정치 리스크까지…투자 위축 우려
 
이에 따라 '포스트 계엄 사태'와 '탄핵 블랙홀'이 본격화할 전망입니다. 불안정한 정국 사태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고되면서 재계는 기업 투자와 경영활동이 위축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주요 기업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돌발 행동을 계속하면서 산업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정치적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확확 바뀌고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나 사업 운영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둔 가운데 윤석열정부가 국정동력을 상실하면서 정부의 협상력 저하가 재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도 적잖았습니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서 B2B(기업간거래)사업을 할 때 '안정된 나라'라는 백그라운드가 중요한데, 정치가 불안해지니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며 "정치 리스크가 제거돼야 기업이 투자를 하고,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에 대응하려면 정부 차원의 외교력 지원과 협상력이 중요하다"며 "식물정부로 전락한 정부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특히 불안감이 커진 해외 거래선들의 이탈 등으로 중장기적으로 산업 및 통상 여건에 타격을 입을 것이란 지적이 컸습니다. 주요 산업 지원 정책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책 불확실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4대 기업 한 관계자는 "계엄 사태와 탄핵 국면 모두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안보를 비롯해 경제, 산업 전반이 다 불확실한 상태"라며 "한국에 와보지 않은 해외 바이어들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불투명하고 투자하기 어려운 나라'로 인식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해외 바이어가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등 혼란스러운 나라에 투자하고, 사업 협력을 하고 싶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불안감을 가진 해외 기업들이 이번 사태로 고객사를 다변화를 할 경우, 국내 기업들의 타격은 불가피하다는 얘기입니다. 
 
또다른 주요 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과 산업계의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된다"며 "정치가 경제에 이렇게 영향을 주면 안 되는데 우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조기 레임덕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분초를 다투는 첨단 산업 분야에서 업계 숙원 법안이 지연될지 걱정"이라고 한탄했습니다. 
 
특히 반도체 산업 세제 혜택을 담은 반도체지원법(K칩스법)을 비롯해 반도체 지원법의 일몰 연장,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 등 당장 시급한 경제 현안들의 처리가 미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산업계 불안감은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로 해외에서 국내 기업들의 대외 신인도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습니다. 지속된 정치적 불안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고환율이 산업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특히 수출 기업들의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고조됐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국제 정세나 통상환경이 급변하는데 국내 정치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환율 불안정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사태로 해외 투자나 바이어들의 신뢰 문제 등 부정적 영향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소연했습니다. 
 
또다른 4대 기업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어느 정권과 친밀하다' 이런 것이 없을 것이다. 기업은 사업을 보고 일하는 것이고, 경영 활동을 잘해서 나라에 기여하자는 게 목표"라며 "어느 정권이든 자꾸 정치 리스크 때문에 기업 운영이 흔들려선 안된다. 기업은 정권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일갈했습니다.
 
4대 그룹.(사진=연합뉴스)
 
탄핵정국에 재계 '비상태세'…산업계 후폭풍
 
재계는 전세계적 경기침체에 이어 국내적으로 탄핵 정국이라는 복합 위기에 맞닥뜨리면서 불확실한 내년도 경영 계획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내년 사업계획 점검회의에서는 정치 리스크에 따른 대책 마련 등이 주된 의제가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삼성전자는 이달 중순 글로벌 전략회의를, 현대차그룹은 다음 주 해외 권역본부장회의를, LG그룹은 통상 분기에 한 번씩 여는 사장단 협의회를 각각 개최합니다. 이 자리에서 기업들은 탄핵 정국 속 경제 지형 급변화와 향후 시나리오에 따른 전략 등을 포괄적으로 점검, 논의할 전망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임원 인사와 조직개편을 마무리하고 새해 사업계획을 짜야하는 상황에서 돌발 변수가 생기면서 내년도 계획을 대폭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탄핵 정국에서 시장 불확실성이 한층 심화되면서 기업들이 내년 사업계획을 검토하고, 보수적인 경영에 돌입하는 등 초비상 상태"라며 "내년 경영환경이 최악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커진 만큼 각사 회의에서는 정치적 변동성에 따른 대응 방안과 투자, 고용, 수출 계획 등을 면밀히 점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또다른 재계 한 인사는 "국정 최고책임자가 동력을 상실한 정부는 사실상 지휘 공백 상태 아니냐. 산업계 후폭풍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글로벌 불확실성에 트럼프 재집권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인데, 국내 정치가 도와주진 못할망정 경영 환경 불투명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대내외적 리스크에 맞닥뜨린 기업들이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런 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정상화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예정된 7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대통령 대국민 담화 중계를 지켜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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