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산업계는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데 따른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집권을 앞두고 강달러 추이를 보이는 상황에서 국내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정치적 불안정까지 계속되면서 환율 급상승에 따른 산업계 우려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9일 재계에 따르면 탄핵 표결 무산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1430원선을 넘어섰습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환율은 2년1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오르며 불안정한 추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경기둔화 속 원자잿값 상승 우려
환율이 오르면 원화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일부 수출기업들은 가격 경쟁력 면에서 유리하지만, 원자재를 사들여 제품을 만드는 대부분의 기업은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합니다.
수출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원자재 상승과 투자비 증가 등 리스크에 맞닥뜨릴 수 있단 점에서 초긴장 상태입니다. 특히 급격한 환율 상승은 수입 가격을 높이는데,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소비자 물가에도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하루에 100원씩 이렇게 너무 급등해버리면 기업들이 대응을 못한다"며 "특히 원자재를 많이 수입을 해야 하는 석유화학이나 대외 부채가 많은 항공업 등에는 마이너스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또다른 산업계 관계자도 "한 달 내 갑자기 몇 번씩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는 환율 급변동이 가장 큰 문제"라며 "환율 상승에 따라 수혜를 보는 업종과 피해를 보는 업종이 나뉘지만, 전체적으로 환율 급변동은 산업계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는 부담스러운 변수"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철강, 항공, 석유화학, 방산 업계는 환율 급등에 긴장하고 있습니다. 철강의 경우 철강재 생산에 필요한 철광석과 제철용 연료탄 등의 원재료를 수입하기 때문에 수익성에 타격이 예상됩니다. 항공업계도 환율이 올라가면 해외 현지에서 사용하는 부담이 높아지고, 유가가 올라 유류할증료가 가중되는 등의 피해가 발생합니다.
정유업계는 강달러 현상이 이어지면 원유 수입 비용 증가로 인한 환차손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방산업계도 정부 간 외교·안보 관계 등이 수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환율에 적잖은 영향을 받습니다. 반도체업계 역시 웨이퍼, 배터리는 리튬·니켈·코발트 등 핵심 산업 원자재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피해가 예상됩니다.
환율시장 변동성 향상, 모니터에서 눈 못떼는 외환 딜러들.(사진=연합뉴스)
"당분간 환율 리스크…정치적 불확실성 때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부결되며 국내 정치 불안이 확대된 점도 환율 불안정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이주원 대신증권 연구원 "당분간 달러·원 환율 상단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며 "지난주 프랑스 총내각 사퇴 결정 등 정치 이슈에도 달러인덱스 상승은 크지 않았지만, 달러·원 환율은 국내 정치 불안이 확대되며 급등세를 기록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연구원은 "달러·환율의 하락 반전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라며 "계엄령은 선포 6시간 만에 해제돼 공포심리는 일부 완화됐지만 탄핵 표결 앞두고 2차 계엄 정황 제보가 전해지는 등 여전히 정치 불확실성이 남아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한국에 대한 투자심리가 훼손된 가운데, 중국 부양기대감이 재차 형성될 경우 국내 자금 이탈 및 중국자산으로 유입되지는 않을지 또한 경계가 필요하다"며 "정치 불확실성이 완화되기 전까지 환율은 높은 레벨에서 변동성이 큰 모습을 지속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보고서 '짧은 계엄령 사태의 여파'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시장 평균보다 낮은 1.8%로 유지하지만 리스크는 점점 더 하방으로 치우치고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앞서 2004년, 2016년 탄핵정국 당시에는 한국 경제가 큰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이번 탄핵 정국에서는 대내외 여건에 비춰 경제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취약하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파장은 더 클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그는 "앞선 두 사례에서 한국 경제는 2004년 중국 경기 호황, 2016년 반도체 사이클의 강한 상승세에 따른 외부 순풍에 힘입어 성장했다"면서 "반면 2025년 한국은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지닌 국가들과 함께 중국 경기 둔화와 미국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외부 역풍에 직면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위평량 위평량경제사회연구소장은 "대한민국 정치, 경제가 전반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원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라며 "환율 상승은 수출 기업에게 좋을 수 있지만, 실제로 내수 경제에 있어서 물가 상승이 급격히 올라가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위 소장은 "그간 계속 고물가였고, 1년 대비 혹은 2년 대비 이렇게 전반적으로 물가 상승률이 계속 올라가는 것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며 "환율 상승은 기업뿐만 아니라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매출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소비자 물가나 체감 심리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부정적 요소"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계엄 후폭풍이 해결되지 않으면 전반적으로 환율 상승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며 "특히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져있다고 판단하면 투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 상황 자체가 굉장히 불안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산업과 경제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환율 급상승으로 나타나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며 "고환율에 따른 철강·항공·석유화학 등 기업들의 단기 순이익 감소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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