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김주하 기자] “주가지수 5000 얘기한 거는 한 2, 3년 지난 다음 정도를 기대하고 (달성할) 자신도 있었던 것인데, 6개월 만에 이렇게 돼버렸다. 그건 신뢰 때문인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한국 증시의 폭발적인 상승을 '신뢰 회복'의 결과로 평가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대통령 스스로 코스피 5000 시대의 도래를 '2~3년 뒤'로 구상했다는 대목입니다.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법적·제도적 시스템(상법·자본시장법 등)을 완비하고 시장에 안착시키기까지 그 정도의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던 것입니다.

바꿔 말해, 불과 6개월 만에 지수가 급등한 랠리는 온전한 제도적 완성의 결과물이 아니라,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시장에 선반영된 현상이라는 것을, 대통령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현재의 증시 호황은 반도체 호황과 금융당국의 전방위적 압박에 기댄 밸류업이 혼재된 과도기란 진단이 나옵니다. 대통령이 구상한 '불가역적 자본시장 시스템 개선'은 아직 미완성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증시 하단에 못 미친 시스템 성과
10일 한국거래소와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국내 증시 상승이 본격화하기 전인 2025년 1월2일 1832조원이던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은 2026년 5월29일 기준 6527조원으로 무려 256.2% 폭등했습니다. 같은 기간 코스닥도 333조원에서 580조원으로 74.2% 성장했지만 코스피에 훨씬 못 미칩니다. 밸류업의 제도적 성과라면 코스피뿐만 아니라 코스닥까지 증시 전반에 수혜가 퍼져야 하지만, 쏠림이 심합니다.
코스피 급등에도 반도체 몫이 큽니다. 1년 5개월 만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합산 시가총액은 435조원에서 3425조원으로 팽창했습니다. 이 반도체 투톱을 걷어내고 계산하면, 나머지 코스피 종목들의 시가총액 성장률은 122.0%로 줄어듭니다. 코스닥(74.2%)과의 격차가 확연히 좁혀지는 것입니다.
정부 역시 이런 과제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최근 "현 정부 출범 이후 코스피 지수가 194.5% 상승하며 8160선을 돌파했고, PBR 2.94, PER 22.15 등 주요 밸류에이션 지표도 주요국 수준으로 높아졌다"면서도 "하지만 개별 기업을 보면 아직 PBR이 1에도 못 미치는 상장사가 53.5%(2556개사 중 1368개사)가 넘는 등 시장 평균의 개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코스피의 가파른 상승은 AI 반도체 특수나 이란 전쟁으로 인한 군수 쪽 호황 등 다분히 외생적인 요인이 작용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을 빼고 비교해 보면 코스닥과 코스피의 격차가 생각만큼 크게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거버넌스 개선의 낙수효과가 아직 증시 하단까지 도달하지 못했다는 관측입니다.
상법은 고쳤지만…개미 지킬 디테일은 과제
경제개혁연구소가 분석한 이재명정부의 국정 과제 이행 현황을 보면, 굵직한 입법 성과 이면에 여전히 거버넌스의 취약점이 확인됩니다. 정부는 출범 이후 세 차례의 상법 개정을 통해 주주 충실의무 도입, 상장회사 독립이사 3분의 1 선임 의무화, 분리선출 감사위원 2명 이상 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자기주식 원칙적 소각 의무화 등을 속도감 있게 처리했습니다.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 설치 등 불공정거래 엄단에서도 가시적 성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정작 코스닥과 중소형주 시장에서 빈발하는 대주주의 꼼수와 사익 편취를 막아낼 핵심 견제수단들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거나 부처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계열사 간 합병 시 대주주의 이해상충을 통제할 소수주주 과반결의(MoM) 제도나 쪼개기 상장 시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법안, 의무공개매수제 도입 등이 여야 찬반 논쟁에 빠져 있습니다. 모회사-자회사 주주 간 이해상충을 유발하는 '이중상장(중복상장)' 문제 역시 신규 상장 시 의무지분율을 50% 이상으로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표류 상태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기업들이 마지못해 주주환원을 늘리고 중복상장을 자제하는 것은 불가역적인 시스템 영향보다 금융당국의 매서운 '표적 감시'가 두렵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이는 작금의 증시 부양이 정권교체나 당국의 기조 완화 순간 후퇴할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불안감으로 이어집니다.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회계사)는 "자본시장의 가장 본질적인 위험은 모회사 주주와 자회사 주주 사이에 항상 존재하는 이해상충 문제"라며 "어떤 정책이 (단순한) 주가 부양에만 초점이 맞춰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코스닥 시장의 소외 현상을 해결하려면 투기장으로 변질된 시장의 생태계 복원도 시급한 과제로 여겨집니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정무위원회)은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논하기 전에 부실하고 위험성이 큰 한계 회사들에 대한 엄격한 '퇴출과 정리'가 선행돼야 한다"며 "미국 나스닥처럼 첨단 전략산업 기업들이 유망하게 성장해 굳이 코스피로 승격(이전 상장)하지 않고도 코스닥에 계속 남아 생태계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치적 풍향계나 당국의 입김과 무관하게, 나쁜 기업을 솎아 내고 대주주의 사익 편취를 막을 제도적 감시 및 견제 기능이 완벽히 뿌리내리지 않는 한 한국 증시가 언제든 회귀한다는 우려도 상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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