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왼쪽) 전 민주노동당 대표와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선 후보가 지난 2월7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협약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정의당 제공, 뉴시스 사진)
[뉴스토마토 김광연·박주용 기자]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지던 진보정당 계보가 최근 정의당에서 흔들리고 있다. 정의당은 지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하며 존폐 위기에 섰고, 급기야 '심상정 책임론'과 당원들에게 5명의 비례대표 의원들에 대한 사퇴 권고를 묻는 찬반 투표까지 진행하며 어수선한 상황이다. 과거 진보정당을 이끌던 원로들은 양당제 폐해 등 구조적 문제를 현 정의당의 침체 원인으로 진단하면서 다양성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및 통합진보당 대표는 2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현 정의당 위기에 대해 "현 양당체제 틈바구니 속에서 진보정당의 행보는 참 험난하고 폭이 넓을 수가 없다. 선거 국면이 되면 중간지대를 다 빨아들이니 양당체제가 돼 버린다"며 "앞선 두 차례 선거 국면에서 양극단이 치열하게 싸우다 보니 정의당을 지지하고 싶어도 '저쪽이 되면 큰일 난다'는 심리로 인해 정의당에 표가 주어지지 않았다. 사회는 정치에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는데 흑과 백만 존재하니 진보정당은 뿌리를 내릴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강 전 대표는 "중앙정치는 당을 알리고 정책으로 설득하며 표로 관철시키기 위한 본무대로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지역구에 풀뿌리 기반들이 기초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이런 부분이 그간 상당히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며 "과거 통합진보당 시절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 형국이 실제 일어나 국민에게 실망을 드리고 기대를 져버렸다. 저도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한 사람"이라고 아쉬워했다.
과거 노동자 편에 섰던 민주노동당과 달리 정의당은 젠더 문제에 치중한다는 지적에 대해 "청년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과 절박성으로 인해 그들을 영입하고, 비례대표 순번을 부여하게 된 것"이라며 "정당 안에서 다양하게 의제를 내놓는 것을 좀 더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폭넓게 봐줬으면 한다. 정의당의 경우 의원 수가 적다 보니까 '지금이 어느 때인데'와 같은 비판이 국민들로부터 제기된다. 가령 민주당의 경우 100명 중 6명 정도가 정의당과 같은 사안을 들고 주장하면 아무 문제가 안 된다"며 "다양성을 강조하는 것은 장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인데 좀 더 여유 있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당 안팎에서 제기된 심상정 전 대표를 향한 책임론 관련해서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강 전 대표는 "심 전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끝까지 완주한 것은 지난번 민주당의 배신행위로 인해 이번만큼은 '홀로 간다'는 확실한 판단에서였다"며 "심 전 대표는 토론 등에서 누구 못지않게 확실한 진보 후보로서 자기 주장과 철학, 정책을 가지고 역할을 했다. 양당에 표심이 몰리니 그에게 책임을 묻는 게 과연 맞느냐"고 반문했다. 앞으로 심 전 대표의 역할에 대해 "그간 정치적으로 산전수전을 겪었고 정책·원칙 등이 확고하며 능력을 가진 분"이라고 했다.
최근 정의당이 당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5명의 비례대표 의원 총사퇴 권고 관련 찬반 총투표에 대해 "당원들이 힘을 모아 회초리를 드는 식의 지적이나 경고를 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의정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 과한 심판 방법이며 그것도 표로 결정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며 "만약 사퇴 찬성 결과가 나왔을 때 당사자들이 받을 충격이나 앞으로 의지 등에서 크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런 발상 자체가 모순이고 이율배반적"이라고 지적했다.
천영세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천영세 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현 정의당의 위기를 다수 득표 선거제도 등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거대 양당 중심 구조에서 진보정당은 언제나 위기였고, 늘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천 전 대표는 "지금 우리나라 선거제도 자체가 잘못돼 있다"며 "국민들의 지지 투표 분포에 비례해서 모든 의석 수가 안 나온다. 근본적으로, 구조적으로 잘못돼 있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 자연히 분단된 나라에서 진보정당이 원래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 하루아침에 (지지율이)높게 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더군다나 거대 양대 정당 중심으로 가다 보니 (정의당이)점점 더 어려워졌다"며 "그렇기 때문에 위기라고 정의당 안팎에서 보고 있는 것뿐이다. 잘 극복해나가리라고 본다"고 했다.
천 전 대표는 과거 민주노동당의 경우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한 정책을 집중했던 반면, 최근 정의당에서는 젠더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당원들의 분포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질적으로 노동자, 농민 등의 당원이 초창기 민주노동당 때보다 많이 줄었다"며 "상대적으로 예전 민주노동당과 비교해 볼 때 당원의 분포도가 달라져 있고, 그러다 보니, 전략적인 과제나 사업들이 조금 달리 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천 전 대표는 "(요즘 젠더 문제에 주력하는 게)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청년, 여성 이쪽도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고, 노동자 문제나 민중의 삶에 대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민주노동당 때보다도 비중이 약해지다 보니 아무래도 젠더 문제가 부각되는 것"이라며 "정의당이 노동 문제를 완전히 외면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젠더 문제는 당연히 진보정당으로서는 중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천 전 대표는 젠더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도 "(정의당은)좀 더 노동자나 중소상공인 또는 도시 빈민 이런 서민들의 삶에 대한 부분에 좀 더 치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천 전 대표는 정의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심상정 의원에 대한 책임론에 대해서는 "개인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만 언급했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등 역대 진보정당을 이끌었던 다른 전직 대표와 원로들에게도 통화를 시도했지만, 대부분 정의당의 현 상황을 언급하는 데 말을 아꼈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제가 말하기 적당하지 않은 질문인 것 같다"고 했고, 단병호 전 민주노동당 의원도 "정의당과 관련해서는 할 이야기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건강상 이유로 통화를 거절했다. 조승수 전 진보신당 대표는 "현 정의당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은 있지만, 현재 활동을 안 하고 있어 더 할 말이 없다"며 "다른 분에게 여쭤보는 게 좋겠다"고 말을 아꼈다.
김광연·박주용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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