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김성은 기자] "최근 수년간 '기후플레이션', '밀크플레이션', '슈링크플레이션' 등 신조어들이 급격히 늘어난 느낌이네요. 결국 물가가 안 잡혀서 이런 것 아니겠어요?"
그야말로 '00플레이션 범람 시대'입니다. 이는 물가 수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에 물가와 연관이 깊은 각양각색의 단어들이 조합되고 있는 까닭인데요. 고물가·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하며 서민들의 피로감이 가중되는 가운데, 산업 전반에 걸쳐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경우가 없다 보니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3년간의 물가 폭등…후유증에 '신음'
인플레이션은 통화량 증가로 화폐 가치가 낮아지고, 이에 따라 물가 전반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제 현상입니다. 국민 관점에서 바라볼 때 화폐 가치가 하락함으로써 실질적인 소득이 감소하는 만큼 절대 달갑지 않은 현상이기도 한데요.
특히 인플레이션 고착화는 국제 수지 악화, 수출 위축, 계층별 양극화 현상 등의 심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중장기적 거시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사안입니다. 무엇보다 최근 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과 함께 동반된 것이 아니라,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성이 있는데요.
최근 들어 각종 플레이션이 범람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물가·저성장 흐름이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살펴봐야 합니다.
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4.65(2020년=100)로 1년 전 대비 1.6% 상승했습니다. 이는 2021년 2월 1.4%를 기록한 이후 3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데요.
문제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상승폭이 낮아진 것은 고무적일지 모르지만, 이미 상당히 물가가 오른 상태를 기준으로 변동률이 적용되기 때문에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 수준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특히 2021년 3월부터 올해 8월까지 3년 5개월은 코로나19 팬데믹 및 엔데믹 발생, 미국의 대대적 양적완화에 따른 과도한 글로벌 유동성 증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유례없는 빅 이벤트들이 쏟아졌던 시기입니다. 모두 국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요인들이며, 이에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경제 역시 고난의 시기를 겪으며 물가 폭등에 신음한 바 있습니다.
급기야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22년 7월 소비자물가가 외환위기 이후 최대치인 6.3%까지 치솟기도 했는데요. 당시에는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뜻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올 들어 물가상승폭이 둔화됐다 해도 이미 지난 3년여간 물가 상승세가 워낙 가팔랐기에 여전히 시장에 남은 후유증은 상당한 실정입니다.
인플레이션 일상화…고물가 누적의 산물
이렇듯 각종 인플레이션의 일상화는 이처럼 오랜 기간 켜켜이 쌓인 고물가 누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셈입니다. 특히 고물가가 국내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커지면서 그 영역도 점차 확대되고 있죠.
주요 사례를 살펴보면 최근 언론에서 자주 많이 등장하는 '기후플레이션'이 눈에 띄는데요. 기후플레이션이란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식료품 물가가 상승하는 형상입니다.
사실 이 기후플레이션은 국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여파가 매우 큽니다. 이상기후가 잦아질 경우 이에 따른 작황 악화를 피할 수 없게 되고, 이는 곧 농수산물 가격을 밀어 올리는 까닭인데요. 농수산물이 대부분 음식의 베이스로 쓰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후플레이션 종국에는 밥상 물가 폭등으로 이어집니다.
우유, 설탕 등 구체적인 식료품이 상승하는 플레이션도 있습니다. '밀크플레이션'의 경우 원유 가격 인상 여파에 따라 유업체들이 시중에 판매하는 유제품 가격을 올리면서 빚어지는 현상입니다.
또 '슈거플레이션'은 설탕 가격 상승에 따라 설탕을 원료로 쓰는 식품 가격이 함께 오르는 현상인데요. 이는 설탕이 국제 원료로서 가격 변동성이 큰 품목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슈거플레이션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주요 원당 산지의 이상기후 여파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뉴시스)
치킨플레이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원부자재 가격 상승, 기업들의 이윤 추구 등을 이유로 치킨 가격이 다른 식품 대비 가파르게 오르면서 이 같은 용어가 등장했는데요. 치킨 한 마리 3만원 시대를 맞이하면서 더 이상 치킨을 '국민 간식'이라 칭하기 무리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올 정도죠.
기업의 이기심이 결합된 플레이션 형태도 있습니다. 업체들이 물가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단기간 발생 비용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는 행태를 '그리드플레이션'이라고 하죠.
아울러 식품 업계를 중심으로 자주 입방아에 오르는 '슈링크플레이션'도 있지요. 업계가 제품의 표면적 가격은 그대로 두지만 용량을 줄여 사실상의 가격 인상 효과를 꾀하는 방법인데요. 기업 입장에서는 실속을 챙길 수 있지만 명확한 표시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충분히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꼼수 마케팅으로 비춰질 수 있는 기법이기도 합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주요 국가들이 돈을 많이 찍었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경제적인 측면과 더불어 중동 전쟁과 미·중 갈등 격화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불안정성도 지속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인플레이션은 상습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김충범·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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