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띠용. 우리 포스터! 재작년 한 공연인데 아직도 붙어 있다니...”
지난 1일 낮, 서울 광진구 동일로 한 건물 지층에 위치한 라이브 공연장 ‘VOFOL’. 밝은 헤어 컬러가 눈에 띄는 두 청춘이 페인트가 덜된 벽면, 콜드플레이 무대를 연상시키는 네온페인팅 피아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말했다. 코로나19 장기화 여파로 보수 기간을 갖고 있는 이 곳은 시간이 정지해 있었다.
2019년까지만 해도 ‘VOFOL’은 일렉트로닉 음악을 즐기는 청춘들이 자주 왕래하던 공간이다. 위층에는 전자음악 교육기관이 있고 아래서는 갖가지 기획 공연이 열리곤 했다. 대중음악 공연장이 몰려있는 홍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수역과도 그리 가깝지도 않은 이 곳이 청춘들로 들끓던 이유는 “쿨한 한국의 전자음악 라이브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기반인 전자음악의 라이브 믹싱 이해도가 이만큼 높은 공연장이 없어요.”
2인 프로듀서 체제인 일렉트로닉 팝 듀오 우자앤쉐인. 지난 1일 낮, 서울 광진구 동일로 한 건물에 위치한 라이브 공연장 ‘VOFOL’에서 우자(오른쪽)와 쉐인을 만났다.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이곳에서 만난 일렉트로 팝 듀오 우자앤쉐인은 “전자음악신에 대한 애정으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곳까지 와주던 발걸음들이 그립다. 관객들과 소통 창구가 없어지는 비관적인 상황이 하루빨리 끝나길 바란다”고 했다.
우자앤쉐인은 같은 학교 실용음악과에서 만난 우자와 쉐인이 2017년 결성한 그룹이다. 작업실을 같이 쓴 것을 계기로 가까워져 본격 전자음악 세계로 뛰어 들었다. 컴퓨터로 음악을 찍기 전까지 어쿠스틱, 모던 록 계열의 음악을 했던 두 사람은 리얼 악기(피아노, 기타, 퍼커션) 또한 능숙하다.
어릴 적 마이클잭슨, 마돈나,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듣고 중고교 때 너바나, 그린데이, 홀 그리고 메탈리카, 메가데스까지 섭렵한 이들은 “리얼 사운드 기반의 팝과 록은 우자앤쉐인의 근간”이라고 했다.
“전자음악을 한다고 해서 머릿속 스위치를 누르고 돌입하진 않아요.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주 매개가 단지 전자음악일 뿐인 것이죠. 리얼악기 중심의 다프트펑크 마지막 앨범을 전자음악으로 보는 것처럼 지금은 가상과 리얼을 구분하는 게 의미 있는 시대가 아니죠.”(쉐인)
지난 1일 낮, 서울 광진구 동일로 한 건물 지층에 위치한 라이브 공연장 ‘VOFOL’에서 만난 우자앤쉐인.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경쾌한 펑키 그루브 리듬에 중독성 있는 팝적 멜로디는 이들 사운드의 뼈대다. 주로 가상악기(VST)와 플러그인을 주무르며 얼개를 짠 뒤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의 블루지한 사운드를 입히는 팝 스타일 전자음악이다. 라이브 무대에서 브라스 밴드와 리얼 드럼, 율동까지 동원하는 이들 음악은 훨씬 더 입체적 면모의 다차원이 된다.
“컴퓨터 음악의 최대 장점은 개방성이에요. 자유적인(세션에 대한 고려가 적은) 측면에서도 훨씬 편해요. 음악이 집을 짓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기둥부터 인테리어까지 제가 다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곡에 대한 애정도 훨씬 커지죠.”(우자) “기타 사운드는 블루스 스타일이죠. 스티브 레이본이나 존 메이어처럼 어떤 장르에도 잘 어울리는 사운드를 입혀보고 싶었어요.”(쉐인)
무심한 표정으로 뭉근한 멜로디와 리듬에 맞춰 귀여운 안무를 선보인 지난해 온스테이지 ‘Kisscuse me’ 영상은 조회수 3만 회를 넘어섰다. 지난 2019년 12월 발표한 첫 정규앨범 ‘Classy’ 더블 타이틀곡이다. 무드 있는 팝과 댄스 그루브를 절충한 이 앨범으로 듀오는 올해 2월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트랙 하나하나는 많이 신경을 썼지만, 콘셉트 앨범은 아니어서 사실 기대를 크게 안했었어요. 어떻게 보면 날 것의 우리를 그대로 실은 앨범인데 그 부분이 되려 좋았나 봅니다.”(우자) “브라스 밴드와 안무 팀은 제 아이디어였어요. 발리우드 영화처럼 딱딱 떨어지는 무브먼트가 있으면 파티 분위기도 나고 좋을 것 같아서요. 케이팝 가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더군요. 저희 음악은 브레이크댄스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하하”(쉐인)
쉐인은 기타가 주력악기지만 피아노, 퍼커션, 가상악기까지 자유롭게 다룬다.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지난해 코로나 장기화에 공연이 줄어들자 경연대회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윤상과 캐스커 이준오 같은 한국 전자음악 1세대 음악가들이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디지털리언 믹스업 Vol.2’에서 이들은 우승을 거뒀다. ‘인디스땅스2020’ 준우승, ‘뮤즈온2020’ 아티스트 선정 등 성과도 얻었다. 지난해 연말에는 두 번째 EP ‘Last Cinema’를 냈다. 펑키한 리듬이 넘실대는 타이틀 곡 ‘Shine’을 필두로 90년대 소프트 펑크 록, R&B풍 넘버까지 종횡하며 미숙하지만 찬란했던 자신들의 20대에 방점을 찍었다.
올해 5월 우자는 세 번째 솔로 EP 앨범 ‘Prototype(프로토타입)’도 냈다. 인간과 기계의 중간 ‘세미 로봇’, ‘얼터너티브 휴먼’을 자처한 세계관부터 신박하다.
“니체가 말한 초인 개념을 좋아합니다. 어떻게 이 삶을 강인하게 헤쳐갈 수 있을까 앨범을 만들며 줄곧 생각했어요. 인간과 로봇의 중간 단계 ‘프로토타입’이 된다면? 괜찮을 것 같았어요. 언제까지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며 평생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변화라는 포인트를 잡고 삶을 다시 생각해 봤어요.”
지난달 세 번째 솔로 EP 앨범 ‘Prototype(프로토타입)’을 낸 우자.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전자음으로 빚은 차가운 금속성 사운드로 휘감긴 1번 곡 ‘Language’는 SNS상 사이버불링 같은 언어의 날카로운 양면성을 그린 곡이다. “칼이 될 수 있는 기술과 언어의 폭력성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언어는 누군가에게 따스한 힘을 줄 수 있는 것인데 왜 다르게 쓰일까... 중간 중간 샘플링 된 절의 풍경소리는 아빠와 함께 갔을 때 채집한 거예요. 그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생의 유한성, 상실 이후 희망을 노래한 타이틀곡 ‘Finer’를 필두로 앨범은 사회와 가족에 관한 사랑(‘Micro’), 주어진 삶과 행복(‘Name)’ 같은 주제를 때론 차갑고 때론 벅찬 톤의 일렉트로 팝 색채로 풀어간다.
“삶에 대해 냉소적이고 허무한 저와 같은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제겐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충분한 치유의 시간이 됐어요.”(우자)
자신들의 음악에 대해 이들은 각기 다른 여행지를 떠올렸다.
“드라이브할 때 저희 음악은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쉐인)
“이번 솔로 앨범의 경우 사방이 온통 철판으로 뒤덮인 방, 명상 방 같은 곳이 생각나요. 그곳에서 충분히 다 쏟아내고 비오는 홍콩(‘우자앤쉐인’ 음악)을 가는 거예요. 우리 음악은 춥기 보단 따뜻하고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인 것 같아요. 이제 곧 장마철이 오겠죠?”(우자)
지난 1일 낮, 서울 광진구 동일로 한 건물 지층에 위치한 라이브 공연장 ‘VOFOL’에서 만난 우자앤쉐인.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이번 밴드유랑은 코로나19로 대중음악 공연장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밴드신과 공연장을 조명하고자 경기콘텐츠진흥원과 특별 기획한 인터뷰입니다. 지니뮤직 매거진 내 ‘경기뮤직’ 카테고리에 연재되는 코너에서는 재편집한 글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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