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탈락 후 극단 선택…법원 "유족급여 지급"
"심사 절차 공정하게 진행됐다고 보기 어려워"
'직권남용 혐의' 김은경 전 장관, 1심서 징역형
2021-08-21 15:19:21 2021-08-21 15:19:21
[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환경부 산하 기관 임원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후 스트레스를 겪어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한 직원에 대해 유족급여를 지급하란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과 관련해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김은경 당시 환경부 장관은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는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등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지난 1986년 12월부터 환경부와 그 산하 기관에서 근무한 A씨는 2018년 5월 공석의 이유로 공개모집한 B기술원 상임이사 직위인 본부장에 지원했다. B기술원 임원추천위원회는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거쳐 A씨 등 3명을 최종 후보자로 추천했지만, 그중 C씨가 청와대 인사 검증에서 탈락해 A씨와 다른 1명이 남았다.
 
하지만 A씨는 그해 7월 간부회의에서 '환경부 장관은 본부장에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것이 목적이고, 원내에는 충족하는 사람이 없어 다시 임용 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란 취지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에 대해 자신의 수첩에 '자괴감을 느낀다. 지난 12년간 기술원에서 일할 만큼 했다' 등의 글을 기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본부장 임명 절차가 이뤄지고 있지 않던 상태에서 A씨에 대해 다른 기관으로의 전보가 검토됐고, A씨는 그해 9월 인사팀장에게 강한 거부의사를 표시했다. A씨는 진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스트레스로 10일 동안 출근하지 못했고, 그해 11월 수면장애, 우울감 증세 등으로 입원 치료를 받다가 결국 그해 12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 유족에 대해 '통상 공개모집 과정에서 탈락에 따른 충격과 고통은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할 부분으로, 고인의 사망에는 업무상 요인보다 성격 등 개인적인 요인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는 사유로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내렸다. 이에 불복해 A씨 유족이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고인은 본부장 인사 등과 관련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우울증세가 발현됐고,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나 행위 선택 능력 또는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며 A씨 유족의 청구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지원한 본부장 심사 절차가 통상적인 공개모집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됐다고 보기 어렵고, 30년 넘게 환경부 또는 그 산하 기술원에서 근무했던 고인으로서는 좌천성 인사까지 예상되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고인은 실제로 불면증, 우울증상 등이 발생해 출근하지 못하면서 자살 충동까지 느끼며 입원 치료를 받았고, 달리 가정적·경제적 문제 등 자살에 이를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볼 자료가 없다"고 부연했다. 
 
C씨가 2018년 7월 청와대 인사 검증에서 탈락한 후 재공고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B기술원 내부에서는 'A씨가 2015년 12월 기술원 노동조합으로부터 존경받는 리더로 선정되는 등 조직 내 신망이 두텁고 기여도가 탁월하다'는 이유로 A씨를 본부장으로 임명하자고 건의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공석이 유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은경 전 장관은 B기술원 본부장에 자신이 내정한 C씨를 임명하기 위해 임원추천위원회를 통한 후보자 추천 절차를 형해화해 서류심사와 면접심사 업무를 방해하는 등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지난 13일 진행된 김 전 장관의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2월9일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혐의로 1심 선고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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