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지난 21대 총선 직전 대검찰청 간부가 여권 인사 등에 대한 고발을 검찰출신 야당 의원에게 사주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다.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손준성 차장검사(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최강욱·황희석 당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등 범 여권 유력 정치인 3명·언론사 관계자 7명·성명불상자 1명 등 총 11명에 대한 고발장을 직접 작성해 국민의힘 김웅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게 얼개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일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한국교회 대표연합기관 및 평신도단체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뉴시스)
피고발인 가운데 언론사 관계자들은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을 보도한 MBC 기자 5명이 포함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현 국민의힘 예비 대선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보도한 뉴스타파 기자와 PD 도 있다. 성명불상자 1명은 채널A 이동재 기자의 강압수사를 MBC에 제보한 인물이다.
의혹을 처음 보도한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가 공개한 고발장을 보면, 이들에게 적시된 혐의는 공직선거법 위반(방송·신문 등 부정이용죄)과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등이다.
이 중 명예훼손 피해자로 적시된 사람은 윤 전 총장과 그의 부인 김씨, 한동훈 검사장(현 사법연수원 부원장)이다. <뉴스버스>에 따르면, 이 고발장은 지난 2020년 4월3일 손 차장검사에 의해 김 의원에게 전달됐다. 당시 김 의원은 미래통합당 송파갑 국회의원 후보 신분이었다. 닷새 뒤인 5일 손 차장검사는 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총선 후보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추가 고발했다고 한다.
의혹의 핵심은 손 차장검사다. 수사정보정책관은 과거 범죄정보기획관실의 후신으로, 보고 체계로 볼 때 사실상 검찰총장이 직접 운영하는 조직이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윤 전 총장이 고발 사실을 몰랐을 수 없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게다가 손 차장검사는 추미애 법무부장관 당시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의 핵심 혐의인 이른바 '법관 사찰 문건'을 제작한 인물이다. 다만, '법관 사찰 문건' 논란은 공판 정보 지원차원에서 작성됐다는 손 차장과 윤 전 총장의 반론과 함께 이에 대한 판단은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의 당부를 가리는 법원으로 넘어가 있다.
손준성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 지난해 12월10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뉴시스)
정치권 반응을 종합해보면, 고발장의 실체는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발장의 진정성과 손 차장검사가 직접 작성해 김 의원 측에 직접 넘겼는지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고발장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한 고위 검찰간부는 "윤 전 총장과 한 검사장은 한 사건으로 볼 수 있지만 김건희씨 사건은 별개 사건이기 때문에, 한 고발장에 적시될 성질이 아니다. 이것은 기초적 법률지식이 있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했다. 법률전문가인 손 차장검사나 그 외 검찰 관계자가 작성했다고 보기에는 상식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 검사장에 대한 실명 적시도 의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이 처음 보도된 시점은 2020년 3월31일로, 고발장이 건네진 시점 3일 전이다. 대검은 전날인 2일 MBC와 채널A 측에 두 사람의 녹음파일이나 촬영물 등 관련자료 제출해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한 검사장이 공개적으로 특정되지 않은 시점이란 얘기다. '검언유착' 의혹과 관련해 처음 고발장을 접수한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해당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검사장을 협박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면서 검사장은 성명불상자로 적시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8월9일 서울 여의도 소통관에서 국민의힘 대권주자 유승민 전 의원 캠프 1차 구성원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뉴시스)
반론도 만만찮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윤 전 총장과 한 검사장, 김씨가 한 고발장에 적시된 것에 대해 "의혹이 사실이라면 내밀하게 진행된 것이라는 사정과 함께 고발의 취지에 초점을 둬야 된다"면서 "형식상의 문제야 실제 고발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충분히 고칠 수 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이번 의혹의 본질은 실제 고발이 됐느냐가 아니라 검찰이 고발을 부탁했는지 여부 자체가 핵심"이라고도 강조했다.
한 검사장 적시 부분에 대해서도 또 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는 "처음 MBC 보도가 나온 뒤 '해당 검사장'이 한 검사장이라는 사실은 법조계 등 알 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텔레그램(추정)으로 전송 과정에서 손 차장검사가 발신인으로 특정된 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도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대검 감찰부가 진상조사에 나선 만큼 사건의 성격 등을 따져볼 때 결론은 조만간 나올 것으로 보인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지난 2일 대검 감찰본부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감찰본부는 다음날 손 차장검사가 대검 근무시 사용하던 업무용 PC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열린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 출범식에 참석해 현판 제막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뉴시스)
한 고위 검찰 간부는 "손 차장검사가 고발장을 작성해 김 의원에게 전달했는지 사실을 가리는 것은 복잡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안이 아니다. 한달 내에 충분히 결론이 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대검의 한 고위 간부도 "오래 걸릴 사항은 아닌 것으로 본다"고 했다. 또 다른 고위간부는 "감찰부가 진상조사를 진행 중인 만큼 지켜봐달라"고 했다.
손 차장검사는 전날 개인적 사정을 이유로 연차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대검 감찰부는 이르면 다음주 중 PC 등에 대한 분석을 마치고 손 차장검사를 불러 진상을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뉴스토마토>는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 차장검사의 반론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연락을 취했으나 답하지 않았다. 다만, 앞서 <뉴스버스> 측에 "황당한 내용의 기사"라며 "아는 바가 없어 해명할 내용도 없다"는 입장을 남겼다.
윤석열 검찰총장 검사징계위원회 2차 심의에 증인으로 출석한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이 지난해 12월15일 오후 심문을 마친 뒤 과천 법무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뉴시스)
그러나 손 차장검사와 관련한 의혹이 규명된다고 하더라도 이번 의혹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뉴스버스>는 전날 윤 전 총장에 대한 법무부 징계의결서 일부를 공개했다. 지난해 12월 작성된 문건이다.
이에 따르면,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에 출석한 이정현 당시 대검 공공수사부장(현 대검 기획조정부장 겸직)은 "수정관실(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총장님 지시에 따라서 (지난해 6월 16일 대검 레드팀 보고서가 나오기) 한 달 전부터 총장님 사모님, 장모님 사건과 채널A 사건을 전담하여 정보수집을 하였다고 들었는데, 관련 법리도 그곳에서 만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손 차장검사가 김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했고, 윤 전 총장도 최소한 이 사실을 알고 묵인했다는 의혹에 무게를 싣는 발언이다.
다만, 이에 대해서도 이정현 검사장이 윤 전 총장과 각을 세워 온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현 서울고검장) 측근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검사장은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근무하면서 '검언유착 의혹'을 수사한 뒤 지난해 8월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징계위 발언도 전언에 근거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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