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가 치명적 제품이라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때가 10년 전인 2011년 8월 31일이다. 이 참사는 우리에게 생활화학제품은 말할 것도 없고 기업이 식품이나 의약품, 그리고 각종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는 이윤이나 편리함이 아니라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교훈을 줬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또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 또한 우리 사회에 위험할 수 있는 제품이 나오지 않도록 사전예방하고 위험의 징후를 조기에 파악할 수 있는 감시 시스템과 법제도를 마련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도 확실하게 일깨워줬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부나 기업, 소비자는 물론이고 언론, 소비자·시민단체, 심지어는 전문가들조차 그렇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일어난 뒤 이들은 살균제로 쓰인 성분을 악마화해 이들 성분을 모든 제품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요구했고 정부는 과학적 검토 없이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 문제는 성분이 아니라 이런 성분을 실내 공기 중으로 퍼지게 만들어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흡입하도록 만든 제품, 즉 가습기살균제로 만들어 안전한 것처럼 속여 판매한 것이 진짜 문제인데도 말이다.
최근 경남 진주시에서 가습기살균제 성분과 관련한 논란이 있었다. 진주시 한 시의원이 '진주시에서 사용된 방역제품 전수조사 결과' 보도자료를 내 "진주시를 비롯한 전국 공공기관에서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성분인 4급 암모늄이 포함된 살균 소독제를 정부 인증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며 유독물질이 없는 다른 제품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진주시 보건소장은 "4급 암모늄을 포함한 코로나19 방역제품은 코로나19 효과 및 안전성 검증을 거쳐 공식 인증된 제품이며 농도 또한 국제 기준 내로 맞춰진 안전한 제품"이라고 반박했다.
이 공방을 보고 시의원과 보건소장 모두 코로나 방역에 사용하는 소독제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 모두 초점을 소독제 성분 자체의 독성에 맞추고 있다. 시의원은 가습기살균제 성분은 유독물질이므로 유독물질이 없는 다른 제품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모든 살균제는 유독성을 지니고 있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이다. 독성이 전혀 없으면서 바이러스와 세균을 깡그리 죽일 수 있는 그런 살균제는 없다. 정부 인증 제품 또는 국제 기준을 만족하는 제품은 안전하다는 말도 비과학적 설명이다. 인증을 받았다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오래 사용하느냐에 따라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는 사용 방식, 즉 제품 형태가 문제가 된 사건이다. 우리나라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겪은 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격이 되어 웬만한 제품에서는 아예 그 성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유사 참사를 겪지 않은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이들 성분을 사용하는데 우리보다 훨씬 더 관대하다. 우리가 가습기살균제 성분에 대해 사용금지에 가까운 조치를 한 것은 과학·독성학에 근거한 한 것이 아니라 막연한 국민감정에 기댔기 때문이다.
독성물질 내지 화학성분이 든 제품에 노출되거나 이를 먹었다가 인명 피해가 생기거나 인류를 위험에 빠트린 대표적 사건으로는 살충제 DDT와 탈리도마이드 기형아 출생을 꼽을 수 있다. '침묵의 봄'을 가져올 것으로 여겼던 DDT와 사상 최악의 약화 참사를 낳은 탈리도마이드가 지구상에서 완전 퇴출됐을 것으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이들 두 성분은 여전히 말라리아 유행 지역에서 모기 퇴치 특급 살충제로, 또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품으로 각각 쓰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해마다 엄청난 사람이 말라리아 때문에 죽고 있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공중보건 차원에서 말라리아모기 박멸에 DDT 사용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국제사회는 이를 받아들였다. 탈리도마이드도 다발성 골수종 등 일부 치명적 질병의 치료제로 다시 쓰이고 있다. DDT는 일부 지역에서 해악보다는 편익이 더 많다는 것을, 탈리도마이드의 경우 알맞은 용도로 쓸 경우 뛰어난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죽이는데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인간의 착각으로 소독제가 공기 중에 마구 뿌려지고 있다. 이는 뿌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하는 사람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장기간 이런 일이 벌어지면 가습기살균제 유사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소독제를 공기 중에 뿌리는 방식의 방역을 삼가라는 지침만 내릴 뿐 중앙정부나 지자체 등 어느 곳도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보건학 박사(jjahn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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