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의준 중소기업정책개발원 규제혁신센터장
연이은 작업장의 사망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이 화두다. 광주의 아파트붕괴사고 보름 만에 토사붕괴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며 산업계와 노동계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올해 1월27일부터 적용된다. 이 법은 산업현장이나 공중이용시설, 교통수단 등에서 사고로 인명피해가 나면 방지의무를 위반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을 처벌할 수 있게 했다.
사망 1명 이상, 동일사고로 6개월 이상의 치료해야 하는 부상 2명 이상,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책임자를 징역 1년 이상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공중이용시설이나 교통수단, 제품의 결함 등으로 이용자가 재해를 당한 ‘중대시민재해’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안전보건법에 사고방지준수사항과 위반 시 처벌기준이 있음에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만큼, 책임자 처벌을 강화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해 산업현장의 사고로 828명이 사망했다. 하루 2~3명이 일터에서 죽었다. 사고사 비율이 OECD 평균보다 50%나 높다. 그러니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과 사고감축을 위한 노력이 더해져야 함은 물론 사고예방을 위해 극단적인 처방을 한다 해도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예방조치에 대한 규정과 위반 시 처벌기준도 제시하고 있음에도 ‘처벌법’을 제정함으로써 예방보다 처벌이 강조되고 있다. 사고발생시 부주의나 예방조치의 미흡 여부를 가리는 것도 쉬워 보이지 않고, 또 경영자를 형사 처벌할 경우 이에 따른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이런 저런 찬반의견이 있는 가운데, 결국엔 이 법이 어떻게 산업현장이나 공공현장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목적은 바로 중대재해의 예방이다. 현장에서 얼마나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사고예방의 준비와 대응이 이뤄지는가 하는 것이다.
사고발생시 책임소재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이다. 사고가 나면 충분히 안전조치를 취했음을 입증하는 게 관건이다. 작업자는 예방조치를 각별하게 따르고 작업상에서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하고, 경영자는 예방과 수습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안전관리비 상승과 작업능률의 저하를 감당해야 한다. 다행히도 단기간에 충분한 안전예방을 하기 어려운 소상공인과 상시종업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2024년 1월까지 법 적용을 유예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사실상 50인 이상의 사업장, 즉 1% 정도에 적용되는 것이다.
이번에 제외됐다고 해서 중소사업장도 안심해서는 안된다. 산재사망사고의 81%가 중소사업장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보완책도 과제로 남겨진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이러저러한 불만과 우려를 해소할 해법은 결국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사고는 현장에서 발생하고, 예방 또한 현장에서 이뤄지는 법이다. 헌데 현장 중심의 해결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인명사고예방이 최우선’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안전캠페인과 안전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늘리고, 사전교육도 철저히 실시해야 한다. 가격이나 기한에 목을 매는 하도급생태계의 문화도 변해야 한다.
둘째, 현장인력 중심의 예방이 중요하다. 자칫 책임회피를 위한 형식적인 서류만 잔뜩 만드는 경우가 나올 수 있어 우려된다. 이보다는 현장작업자가 적극적으로 안전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스템, 현장작업자가 책임자에게 안전에 필요한 사항을 요구하면 적극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이는 사업장의 안전관리시스템을 만들고 단순·명료한 실행지침을 통해 지속·반복적인 점검과 개선을 해나가면 가능하다. 특히 50인 이상 중소기업에는 사전에 현장진단과 컨설팅, 안전시설이나 운영을 위한 자금 등을 지원해야 한다.
셋째, 사고원인의 철저한 규명과 누구도 억울함이 없는 법 집행이 필요하다. 이 법은 처벌법이지만 처벌보다는 궁극적인 목적인 예방과 보호를 우선해야 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중대재해예방특별법’으로 활용이 돼야 하지 않나싶다.
이 법이 있음에도 행여나 사고는 사고대로 나면서 경영자는 처벌되고 기업은 사고원인 규명에 시간·노력과 법적 다툼으로 힘들어지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보다 면밀하고 세부적인 예방활동이 우선돼야 한다. 사고는 당사자는 물론 주변에 불행스런 일이다. 사고를 원하거나 고의적으로 방치하는 경영자나 근로자는 없을 것이다. 중대재해는 무관심·무성의에서 비롯된다. 노사 모두가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기본적인 책무로 삼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의준 중소기업정책개발원 규제혁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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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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