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이 지난 15일 온라인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눈길 끄는 계획을 내놨다.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하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카이스트가 운영 중인 의과학대학원을 2026년경 과학기술의전원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총장의 설명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바이오·의료 시장은 1조7000억달러 규모로 무한한 성장이 예상되는데, 국내에서는 의사들이 연구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바이오메디컬 시대의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중심 의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카이스트는 한국 최고의 과학전문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하나로서, 수많은 과학기술 인재를 배출했다. 이제 의사과학자 양성에 눈을 돌리게 된 것 자체가 반가운 일이다.
모름지기 과학은 결국 인간으로 향한다. 물리학이나 화학이나 생물학 등 분야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인간의 삶을 돕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바지한다. 특히 인간을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오래도록 추구돼온 과학의 궁극목표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에서 의학전문대학원 구상은 20년 전 김대중 정부 시절 구체화됐다. 의학전문대학원이 필요하게 된 이유는 과학의 소양을 학부 시절에 충실히 익힌 후에 의학교육을 받게 함으로써 교양있는 의사를 양성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과학으로서의 의학을 깊이 있게 연구할 의사과학자를 양성한다는 목표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국내 명문대학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학들이 의학전문대학원을 마다하고 현행 의과대학 체제를 고수했다. 아마도 고등학교 성적 좋은 학생들을 계속 독차지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결국 의학전문대학원 설립계획은 반의반쪽 열매를 맺는 데 그쳤다.
더욱이 의사 배출 인원도 엄격히 제한됨에 따라 의사과학자 배출은 더욱 어려워졌다. 제한된 인원이 배출되고, 그들이 임상의사로서 진출할 곳도 많다. 그러니 의사과학자라는 상대적으로 머나먼 길을 선택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의사정원이 묶여 있으니, 의사들 밥그릇 지키기에는 좋지만 의사과학자 양성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최근 한 전문지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의사과학자가 30%에 달해 연구와 창업을 통해 성과를 내지만 우리나라는 10%에 불과하다. 우수한 인재들이 임상 진료에만 매달리는 셈이다. 이번 코로나19 전염병 사태를 겪으면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이끌 '의사과학자'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도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백신과 치료제를 스스로 개발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해서는 상당히 뒤져 있다. 그나마 성과를 보인 것은 선진국이 개발한 백신을 하청생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백신 허브’라고 포장한다.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다. 정부는 백신을 차세대 3대 먹거리의 하나로 선정해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계획 자체는 시의적절하다. 또 백신을 포함한 바이오제약 산업은 한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그렇지만 바이오제약산업이 더 큰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역시 의사과학자가 충분히 양성돼야 할 것이다.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문제는 의사 인력 양성 인원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다. 카이스트가 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하고 싶어도 이 같은 제한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재작년에 의대 정원을 늘리고 공공의대를 설립하겠다고 나섰지만 조급하고 미숙하게 추진하다가 의사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다. 그 결과 그런 계획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 총장은 의전원 출신의 임상의사 진출을 제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지만 의대 정원 제한이 풀린다면 그런 제한도 굳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 임상의사로서 현장에서 진료 경험을 쌓으면서 이론적 깊이를 더하면 된다. 또 임상의사로서 일하다가 모종의 계기와 각성을 통해 의사과학자로 완전히 변신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므로 의사과학자 양성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의대정원은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다음 정부의 과제로 넘어갔다. 카이스트가 차기 정부 당국자들과 차분하게 협의하고 의료계를 설득할 필요하다. 모처럼 세운 의미 있는 계획이 알찬 결실을 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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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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