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 마련된 당선인 사무실에서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미국대사대리를 접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다시 고조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북정책도 첫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윤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한미 동맹을 최우선시하며, 북한에 있어서도 선제타격 가능성까지 제기하는 등 강경론을 펼쳐왔다. 이와 함께 미중 사이 균형자론을 전개했던 전임 정부들과 달리 국내의 혐중 정서를 노골적으로 거론하며 대립적 자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신냉전 정책으로는 남북관계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13일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의 서해위성발사장 확장 개축에 나섰다. 또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는 폭파했던 갱도 중 일부를 복구하는 정황이,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에서는 5메가와트(MW)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고농축우라늄(HEU) 제조시설 등이 가동 중인 모습이 포착됐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남한 대선 등 정세 불안을 틈타 진행되는 북한의 고강도 무력시위는 대북 강경론의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남북관계를 대결 분위기로 몰고갈 공산이 크다. 특히 북한은 윤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가동 기간인 오는 4월 ICBM 도발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4월 중으로 예상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혹은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4월15일)이 예상 도발 시점이다.
이날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북한이 ICBM 발사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특별한 입장을 현재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북한을 향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지극히 수위를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 전날에는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는 국제사회에서 상응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원론적 입장을 보였다. 미국이 추가 대북 제재를 예고한 상황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응을 촉구하는 수준이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여러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북한을 애써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으로 읽혔다.
대선 과정에서 윤 당선인이 밝혔던 입장들을 살펴보면 대북정책 기조는 힘의 우위를 통한 사실상의 제압이었다. 그 첫 번째가 한미 동맹 강화였다. 미국과 보조를 맞춰 북한의 비핵화 전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해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한편, 대북 억지력에도 중점을 뒀다. 특히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추가 배치 등 다층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 및 대량응징보복(KMPR) 역량 강화도 약속했다. 그는 "억지력을 바탕으로 힘을 통한 평화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11일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서해위성발사장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제공, 뉴시스 사진)
전문가들은 인수위를 거쳐 새정부가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면 윤 당선인이 밝혔던 대북 강경책이 현실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 역시 강 대 강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한반도에는 또 다시 짙은 암운이 드리워질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 초기 불었던 훈풍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냉각기로 접어들었다면, 윤석열정부에서는 과거 대결구도로의 회귀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윤 당선인이 중국에도 지극히 우호적이지 않은 입장을 내비치면서 신냉전이 재연될 수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윤석열정부는 한미동맹 하에 엄격한 상호주의를 통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향후 구체적인 플랜이 나와봐야 알 수 있지만 대선 과정에서 북한은 주적이다, 선제타격 등의 발언을 봤을 때 남북관계 정상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당분간은 남북관계에서 뭔가 변화나 진전을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남북관계가)악화 쪽으로 가는 것을 좀 억제하는, 상황이 더 나쁘게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윤 당선인의 강경 대북정책이 북한에게 오히려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어떤 면에서는 한국 정부가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북한에게는 도움이 되고 득이 되는 부분이 있다"며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이 5년 동안 전략무기를 완성하겠다고 했는데 이제 4년 남았고, 속도를 굉장히 빨리 내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강경할수록 이를 활용할 명분이 생기고 국제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논리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중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남북관계 개선에는 부정적 요인이다. 윤 당선인의 한미동맹 강화 조치들은 중국 입장에서 한국이 미국의 대 중국 압박에 동참하는 행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윤 당선인이 공약한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4개국 협의체) 참여와 사드 추가 배치 등이 대표적인 대중 압박에 동참하는 조치로 꼽힌다.
홍민 연구실장은 "문재인정부가 (미중 사이)어느 쪽에 크게 치우치지 않으면서 적절한 (한미)동맹의 관계는 유지하고 대중 관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려고 했던 것이 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한중 전선이 무너지면 북한이 중국과의 전략적 제휴 전선을 펼치는 게 더 밀접해지고, 중국이 북한을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해 무기화 시켜서 상당 부분 한국이나 미국을 압박할 수 있다. 남북관계가 좋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연장선상에서 한중관계 접근법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용현 교수는 "윤석열정부가 한중 협력에 대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선거 때 한중관계에 대한 기존의 입장과 실제 대통령으로서의 입장은 달라야 한다. 당선인의 입장에서 좀 더 차분하게, 좀 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 마련된 당선인 사무실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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