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성남 기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격언이 3월 주주총회 현장에서 입증됐다. 소액주주가 연대해 대응한
헬릭스미스(084990) 주총에서는 이사회에 소액주주측 사내이사가 선임됐지만, 연대에 실패한 소액주주가 포진한 회사에선 경영진에게 유리한 안건이 별다른 무리없이 대거 통과됐다.
지난달 16일 경기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주주들이 줄을 서고 있다. 사진=조재훈 기자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헬릭스미스 경영진과 소액주주 간 신규 사내이사 선임 관련 표 대결에서 소액주주 측이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헬릭스미스는 지난달 31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본사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사측이 후보로 내세운 박영주 임상개발부문장 겸 미국법인장을 신임 사내이사 후보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으나 해당 안건은 부결됐다.
반면 소액주주 비대위 측이 지지한 박재석 후보 선임의 건이 승인됐다. 박재석 신규 이사는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이사, 게임회사 '네시삼십삼분' 부사장을 지냈다. 다만 소액주주 측이 내세운 최경준·김호철 사외이사는 통과가 부결됐다. 결과적으로 헬릭스미스 소액주주 비대위는 지난해 사내이사로 선임한 최동규 전 특허청장과 김훈식 유티씨인베스트먼트 고문 등 2인에 이어 추가로 1인을 확보하면서 이사회 8명 중 3명을 자리에 앉히게 됐다.
헬릭스미스 소액주주가 모여있는 커뮤니티에는 "소액주주의 판정승", "사내 이사진 세명이 우리 사람", "김선영 대표는 임상에 올인해 주길" 등 소액주주 의결권을 연대해 행사한 주주들의 희망적인 댓글이 이어졌다.
반면 경영진의 대규모 퇴직보상금 조항과 무경력 대표이사 선임 등 경영진에게 유리한 안건이 무리없이 통과된 회사들의 모습도 나타났다.
가온미디어(078890)는 지난 25일 주총 결과에 따라 임동연 대표이사를 새로 선임한다고 공시했다. 임동연 대표는 임화섭 전 대표이자 가온미디어 창업주의 1997년생 아들로, 작년 1월 입사해 경력이 1년 남짓에 불과하다. 임 대표는 같은 날 주총을 통해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된 뒤 이사회 의결을 통해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회사 정관상 사내이사는 회사 입사 1년의 경력만 필요해 절차상 문제는 없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주총에선 임 전 대표에게 약 120억원의 퇴직금을 지급할 수 있게 하는 안건도 통과됐다. 특별한 공로가 인정되는 임원에게는 퇴직금 외 별도 명목으로 직전 연도 보수 총액의 3배 한도로 특별위로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임원 퇴직금 규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당 규정은 지난 1월1일부터 소급 적용되기 때문에 임 전 대표도 규정에 따라 최대 120억원을 챙길 수 있다. 회사의 작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약 280억원인데, 120억원의 퇴직보상금 규정이 통과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임 대표 일가가 고작 지분율 14%로 회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2021년도 사업보고서 기준 소액주주 비율은 75.33%다.
엔지켐생명과학(183490)은 이번 주총에서 대표이사의 해임시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하는 ‘황금낙하산’ 도입에 성공했다. 정관변경으로 올라온 안건은 모두 통과됐다. 안건은 △적대적 M&A로 판단되는 이사의 선임 및 해임 시 의결권 출석주주 80%, 발행주식 75% 이상 확보 △이사의 수 9명에서 7명으로 축소 △최대주주와 이사의 해임 시 각각 200억원, 100억원의 퇴직 보상금 지급 등이 주총에서 의결됐다. 지난해 말 기준 손기영 대표 등 엔지켐생명과학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18.74%다. 소액주주들의 지분율은 76.32%다. 엔지켐생명과학의 주총에선 의결권이 있는 주식 총수(833만1345주)에서 414만0273주(49.70%)가 참여했다. 황금낙하산 조항이 들어가 통과 여부에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제2호 의안,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은 69.76%가 찬성해 원안대로 승인됐다. 이번 정관변경의 경우 특별결의 사항으로 출석한 주주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의 3분의 1 이상이 충족돼야 했다. 결과적으로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하는 과정에서 1%포인트 차이로 해당 안건이 통과된 셈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소액주주가 연대해 오랜 시간 대응해 온 상장회사의 경우 끈끈한 연대를 통해 공통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서도 "연대가 없는 상장회사의 경우 저조한 투표율과 무관심에 따라 회사 경영에 사실상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높은 소액주주 비중이 오히려 통과가 어려워 보이는 안건의 수월한 통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제주도 제주시에 위치한 카카오 제주 본사 '스페이스닷원' 모습. 소액주주가 200만명이 육박하는 카카오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제주 본사에서 지난 29일 주총을 진행하면서 소액주주의 비난에 직면했다. 사진=카카오
최성남 기자 drks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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