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두 번째 비행이 기약없이 미뤄졌다. 절반의 성공에 그쳤던 지난 10월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주 7대 강국으로의 진입을 위한 또 한 번의 도전이 발사를 하루 앞두고 무산됐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만큼 발사 취소가 결정된 순간의 안타까움은 더 크게 밀려왔다.
누리호가 발사되는 나로우주센터까지는 가는 길부터 쉽지 않았다. 15일 오전 KTX를 타고 도착한 순천역에서도 버스를 타고 한 시간 가량을 더 달려야 했다. 구불구불한 산 길을 지나기를 한참여, 나로우주센터가 위치한 외나로도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등장했다. 전라남도와 고흥군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내건 '누리호 2차 발사의 성공을 응원한다'는 현수막들도 잇따라 눈에 띄면서 목적지에 거의 당도했음이 느껴졌다.
나로우주센터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인 나로터널 앞. 바리케이트가 쳐진 검문소에는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안내와 함께 허가된 차량 이외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검문소를 지키는 경찰들은 버스에 올라타 취재진의 비표를 일일이 확인한 후 출입을 허가했다.
나로터널 앞 설치된 검문소에 '일반인 출입 통제'를 알리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출입을 허가 받지 않은 차량이 회차 중이다. (사진=김진양 기자)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탓에 대중들과 함께하는 축제같은 이벤트를 기대했던 기자의 상상은 빗나갈 수 밖에 없었다. 비가 갠 화창한 하늘, 고요한 바다의 파도소리, 짙은 녹음과 어울어지는 국내 첫 발사체 나로호 모형까지 나로우주센터의 풍광은 평온하지 그지 없었으나 공기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발사대로 향하는 관문은 바리케이트가 이중, 삼중으로 쳐지며 비표가 없는 차량의 출입을 통제했다. 내부로 들어가는 차량도 블랙박스를 봉인하는 등 보안을 철저히했다. 군과 경찰 병력이 나로우주센터 곳곳을 거닐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만약을 대비한 소방 인력들도 배치됐다. 나로우주센터 앞 광장에 마련된 주요 방송사들의 중계 부스와 차량들만이 누리호 발사를 앞둔 설렘을 키울 뿐이었다.
나로우주센터 내에서도 발사대로 향하는 길은 허가된 인원 외에는 출입이 불가능했다. (사진=김진양 기자)
발사대로의 출입 통제는 취재진에도 적용됐다. 누리호가 설치된 제2발사대는 산으로 가로막혀 육안으로 발사 준비 모습이나 발사 순간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발사대 인근에 설치된 카메라로 중계되는 모습을 함께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에 반나절을 달려온 허탈함이 밀려왔다. 누리호의 이륙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면 산 위로 창공을 가르는 모습은 볼 수 있다는 점이 다소 위안이었다.
순천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다소 흐렸던 하늘이 점차 맑아지기 시작했다. 전일 발사체 이송을 막았던 바람도 잦아들었다. 이날 아침 조립동을 출발한 누리호는 발사대로 무사히 도착해 기립과 고정작업을 계획대로 마쳤다. 날씨까지 도와주니 최종 점검 과정에서 문제만 없다면 누리호가 우주로 향하는 것엔 큰 어려움이 없을 것만 같았다.
전남 고흥의 나로우주센터 앞 광장의 모습. 나로호의 실물 사이즈로 설치된 모형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사진=김진양 기자)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분위기는 오후 4시가 넘어가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예정됐던 사전 점검 현황 브리핑이 계속 늦춰지면서 현장의 공기는 점차 무거워졌다. 항우연 측은 "추가 점검을 할 부분이 생겼다"며 기자들을 달랬지만, 발사체와 발사대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자칫 발사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상율 항우연 원장이 직접 프레스센터에 등장했다. 브리핑을 맡은 고정환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담담한 목소리로 발사 취소 사실을 알렸다. 발사체가 기립된 상태에서는 문제가 발생한 부분의 접근이 어려워 조립동으로 다시 이동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로우주센터 프레스센터에 마련된 TV를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김진양 기자)
속보를 치는 기자들 사이에서 이따금씩 탄식과 한숨이 새나왔다. 고 본부장은 "이런 일이 발생해서 굉장히 당혹스럽고 죄송하다"고 심경을 전했다. "조속히 문제를 해결해 확실하게 도전하겠다"는 의지도 거듭 다졌다.
발사관리위원회의 결정과 함께 발사대에서 분리되기 시작한 누리호는 이날 밤 10시30분 조립동으로의 이송이 완료됐다. 16일부터 문제를 찾는 일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간단한 부품 교체 등이 문제였다면 오는 23일까지로 설정된 발사 예비기간 내에 재발사가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올 여름을 넘길 가능성이 크다. 장마와 태풍 등 기상 변수를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8월 초에는 달 탐사선 발사도 앞두고 있어 이와도 일정 중복을 피해야 한다.
다음번 나로우주센터를 떠날 때는 누리호 발사 성공의 기쁨과 흥분 속에 있기를 기약하며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고흥=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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