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나락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 "아직 정신 못 차렸다"는 질타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연이은 패배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반성을 시작으로 거듭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관심은 온통 당권에만 집중돼 있다. 지긋지긋한 계파갈등은 당권투쟁으로 비화된 지 오래다.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이재명 불가론', '대안 부재론', '총선 참패론' 얘기 뿐이다. 그 어디에서도 정확한 진단과 해법을 말하지 않는다. 일부는 누구 편에 서야 할 지 눈치경쟁이다. '쪽박'으로 가는 길이다.
그렇게 민심은 또 다시 설 자리를 잃었다. 당대표를 선출하는 민주당 전당대회 룰을 한 번 보자.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중앙위원회의 예비경선(컷오프)을 통과해야 한다. 철저한 기득권의 관문으로, 당내 세력 없이는 본선 진출은 꿈도 못 꾸는 구조다. 어렵사리, 혹은 운이 좋아 예비경선을 통과했다 해도 당심이 90% 반영되는 경선 방식으로는 제2의 노무현도, 제2의 이준석도 등장할 수 없다. 먼저, 국회의원이 사실상 통제하는 대의원 표심이 45% 비중을 차지한다. 6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한 권리당원이 40%로 그 다음이다. 이어 일반당원 여론조사가 5% 더해진다. 민심을 반영하는 일반국민 여론조사는 고작 10% 반영에 그친다.
이재명 민주당 의원이 지난 18일 인천 계양산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이재명과 위로걸음, 같이 걸을까' 만남에서 지지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아군조차 피아로 구분하는 강성 지지층의 이분법적 사고가 당을 장악한 결과는 참혹했다. 문재인정부 마지막까지 민주당을 장악한 주류는 '문파'였다. 대통령의 침묵 속에 금태섭이 내쳐지고, 표창원이 떠나고, 박용진과 조응천이 칼을 맞았다. 이 같은 본보기에 모두 입을 닫고 눈치를 살폈다. '원팀'은 침묵을 강요하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구호였다. 대선 경선에서 이낙연과 정세균이 이재명에 무릎을 꿇으면서 세력교체가 동반됐다. 사실, 이재명은 대선 중반까지만 해도 2030 여성들을 주요 지지층으로 두지 못했다. 오히려 이대남을 기웃거렸다. 윤석열과 이준석으로부터 외면당한 2030 여성들은 결국 반대전선에 선 이재명으로 결집했고, 이는 '개딸'이라는 신드롬을 낳았다. 앞서 '손가혁'의 위력과 한계를 본 이재명도 순순히 이들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문파의 자리를 개딸이 대신했다.
팬덤 현상을 무조건 비하만 할 것은 아니다. 다만, 정치가 이들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이들을 이용해 세력화하고, 세력화를 기반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당권을 장악하는, 그래서 민심의 투영을 가로막는 팬덤정치는, 박지현의 호소처럼 결별해야 한다. 국가를 책임질 정치라면 오히려 이들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럼에도 친명은 권리당원 반영 비율을 높이기 위해, 친문은 현행 룰 고수를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다. 당권이라는, 총선 공천권이라는 절대적 이해관계는 팬덤과의 결탁을 부채질했고, 결국 민심의 통로는 차단됐다.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도, 호남에 고립되고도, 다시 필패의 길로 치닫고 있다. 공멸하고서야 후회한들 뒤늦은 한탄일 뿐이다.
2002년 단기필마와도 같던 노무현이 이인제 대세론을 꺾을 수 있었던 배경은 전적으로 국민참여경선에 있었다. 당시 '노사모'라는 팬덤은 민심과 호흡하며 노풍을 현실로 이끌었다. 0선의 30대 젊은 정치인 이준석이 조직 하나 없이 나경원을 꺾고 보수정당의 대표로 오를 수 있었던 것 또한 2030과 민심의 결합이었다. 바람은 그렇게 민심을 업어야 태풍이 된다. 연장선에서 국민의힘 전당대회 룰이 시사하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국민의힘은 예비경선에서 당심과 민심을 각각 절반씩 반영, 이준석의 등장 길을 터줬다. 본선에서는 당심 비율을 70%로 올리고 민심 비율을 30%로 내렸지만, 이미 돌풍이 된 이준석 현상을 당심이 거역하지는 못했다. 수구 꼴통과도 같던 국민의힘 대변화에 국민은 다시 그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지금 민주당이 내려야 할 패배 진단과 해법은 모두 국민 속에 있다. 금배지의 연장 여부를 결정할 이들도 국민이다. 때문에 친문이니 친명이니 보잘 것 없는 계파논리가 아닌 국민 속으로 뛰어들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쇄신 길을 찾아야 한다. 하물며 국민의힘도 해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이 민심의 통로를 걸어 잠궈서는 안 된다. 50%가 아닌 100% 민심에 따른 회초리도 각오해야 한다. 그것만이 현재 민주당이 할 수 있는 반성이며 쇄신이고 다짐이며 변화다. 지독한 패배주의 속에서 집안싸움을 통해, 침묵과 방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공천장 하나 뿐이다.
정치부장 김기성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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