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의 네 번째 취임사에서 단 하나의 단어를 꼽자면 ‘약자’다. 오 시장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약자와의 동행을 내걸었고, 역대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으며 4선에 성공했다. 역대 최다 득표도 2006년 오 시장이 세운 기록이다.
오 시장이 이번 취임사에서 약자와의 동행을 두고 평생 과업이라고 강조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 시장이 약자를 내세운 것은 나름 변화라면 큰 변화다. 불과 1년 전인 2021년 취임사에 등장한 1125개 단어 중에 약자란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2010년 취임사에는 한 번 사회적 약자가 등장한다. 당시 취임사에서 ‘통합의 시장’을 강조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우선으로 따지고 챙기겠다고 언급했다. 2006년 취임사에서 약자란 단어는 없다.
지금까지 오 시장의 취임사를 관통하는 말들은 도시경쟁력, 글로벌도시, 매력있는 도시, 재개발·재건축 같은 단어다. 오 시장은 시민들에게 어떠한 비전을 제시하는 데 능숙했고, 실제로 많은 업적들을 이뤄내며 지금의 자리까지 올랐다.
물론 이번 취임사에서도 도시경쟁력이 등장하고, 글로벌도시, 매력있는 도시, 재개발·재건축 모두 등장한다. 하지만, 모두 약자보다 후순위다. 이제 오 시장은 성장보다는 성숙을, 순위·수치보다 가치를 얘기한다. 오 시장은 약자와의 동행과 양극화 해소를 얘기하며, 이전과는 조금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전 세계 여느 도시들이 그렇듯 화려한 네온사인 뒤에는 그 그림자에 가려진 굶주린 사람들이 존재한다. 강남의 높은 빌딩숲 뒷골목에는 고시텔에 사는 사람들, 최저시급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서울역 고층빌딩과 동자동 쪽방촌의 거리는 채 100m도 되지 않는다.
지난 시간들 동안 서울이란 도시가 더 살기 좋아지고, 도시경쟁력이 올라갔는지는 모르지만, 양극화가 더욱 심해진 것 또한 사실이다. 서울역엔 여전히 노숙자가 많다.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 서는 사람들에게 부동산 광풍은 다른 나라 얘기다.
가난은 나라도 못 고쳐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약자를 돕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복잡하고 복합적이며, 단순히 시혜적인 정책으로 다가가다간 역효과를 불러오기 쉽상이다. 집을 지어 주는 건 어쩌면 쉽지만, 그 집에서 계속 잘 지낼 수 있도록 관리하는 건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노숙자, 저소득층, 노인, 어린이, 장애인, 청년, 1인 가구, 미혼부모 등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1인당 얼마 쥐어준다고 도움이야 되겠지만, 처한 현실이 한순간에 달라지지 않는다. 어떤 부분에 어려움을 겪는지 살펴보고 하나씩 하나씩 바꿔나가야 한다.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그물망도 여러 개 필요하고 현장도 수시로 살펴야 한다.
오 시장의 지난 임기 마지막 공식일정은 돈의동 쪽방촌 방문이었다. 700개가 넘는 쪽방이 있는데 에어컨은 30대도 안 된다. 심지어 스탠드형도 아니고 벽걸이형 에어컨을 방이 아니라 복도에 달랑 하나 설치해 두고 여덟 개의 방이 같이 쓸 정도다.
그렇다고 한 번에 에어컨 670개를 설치해주면 될 일이 아니다. 쪽방촌 구조상 실외기를 설치 못하는 곳, 전기배선이 낡아서 설치 못하는 곳이 상당수다. 당장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전기세 부담에 마음껏 틀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쪽방촌을 둘러 본 오 시장도 복잡한 현실을 살피곤 “갈 길이 머네요”라고 얘기할 정도다.
그럼에도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낸 세금으로 내 삶을 바뀌는 게 좋은 행정과 정치인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내 삶이 바뀌는 것도 좋지만, 약자들에게 우선 쓰이는 게 점점 당연한 시대가 되고 있다. 오 시장이 말한 약자와의 동행이 갈 길이 멀겠지만, 현실이 되길 바란다.
박용준 공동체 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진규 온라인뉴스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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