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정부가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예비회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미국에 전달한 가운데 앞으로 이 협의체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기술 우위에 있는 미국 주도의 협의체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보면서도 한국의 참여 시 반발이 예상되는 중국이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에 직접 대응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8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는 최근 미국 측에 칩4 예비회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르면 이달 말이나 9월 초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예비회의에서는 협의체 공식 명칭과 세부 의제, 참여 수준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3월 제안한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인 칩4는 팹리스(미국), 파운드리(한국·대만), 소재·장비(일본)에 각각 강점이 있는 4개국이 반도체 공급을 위해 협력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다만 우리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칩4 가입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취해 왔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 각 부처가 그 문제는 철저하게 우리 국익의 관점에서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양팽 산업연구원 박사는 "미국이 반도체 원천 기술 자체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보니 장기적인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생각하면 미국의 참석 요구에 대해 우리가 '노(No)'라고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잘 모르겠다"면서 "우리가 중국에 민감한 것은 결국 사드로 한번 보복을 당해봤기 때문인데, 칩4가 어떻게 진행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미 결론을 내놓는 보도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칩4는 반도체 개발 부분에서 제한하는 것이지 반도체 수요까지 막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왔을 때 말할 수 있지만, 지금 단계에서 중국의 배제, 미국과 중국의 충돌 등의 그림을 그려놓고 보기에는 이르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7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로 인해 중국과 갈등을 겪었을 당시처럼 즉각 보복에 이르지는 않겠지만, 현지 점유율이 높은 반도체 외의 다른 산업으로 규제가 발생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반도체 기술 종주국으로 우리나라의 반도체 기술 경쟁력 유지를 위해 칩4 참여는 불가피해 보인다"면서도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반도체 수출 대상국으로 칩4 참여 시 우리나라의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어 중국의 보복은 반도체 외의 분야에서 영향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 특히 우리나라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워낙 높고, 중국 기업과의 격차도 크기 때문에 직접적인 수출 규제를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칩4체 참여한는 각 나라의 업체들이 서로 경쟁사이므로 나중에 공식 가입을 한다고 해도 완전히 일체가 돼서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예전의 사드 사태 때와 비교해 한국의 경제 규모도 커졌고, 반도체 회사들의 경쟁력이 좋아져서 보복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중국에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가 없으면 경제도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에 보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백악관 사우스코트 대강당에서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리어트, 코닝 등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반도체 업계는 미·중 갈등과 관련한 제재 이후 또다시 대외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이번 칩4 예비회의 참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어 해당 사안에 대해 얘기하기가 어렵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업계에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미국이 2019년 화웨이, SMIC를 상대로 한 반도체 공급 규제 이후 주요 국가·지역의 중국 반도체 수입 시장 점유율 변화를 분석한 결과 2018년 대비 2021년 한국의 점유율은 5.5%포인트 줄었다. 이 기간 대만의 점유율은 4.4%포인트, 일본의 점유율은 1.8%포인트 각각 늘었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지난 2019년 4월부터 2020년 9월 네 차례에 걸쳐 중국 화웨이, SMIC를 상대로 미국의 반도체 소프트웨어·장비를 활용해 생산된 반도체의 공급을 규제했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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