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2003년 배달호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두산중공업의 손배소·임금가압류로 생활고에 시달려왔다. 두산중공업은 파업 노조원들에게 손해배상액 65억 원을 청구하고 임금 53억 원을 가압류했다. 배 씨도 파업 노조원 중 하나였다. 그는 유서에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같은 해 한진중공업의 김주익 노조위원장도 목숨을 끊었다. 그 역시 한진중공업에 150억원대의 손배가압류를 당했다.
기업이 손배소를 통해 노조를 탄압하려는 전략은 이미 수차례 드러났다. 삼성그룹의 2012년 노사전략 문건은 ‘고액의 손해배상 및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경제적 압박을 가중시켜 활동을 차단하고 식물노조를 만든 뒤 노조해산 유도’라고 적혀있다.
유성기업은 2011년 쟁의 때 노동자들을 회사에 우호적인 제2노조에 가입시키기 위한 방책으로 ‘손배소 대상 제외’를 내걸었다. 거액의 손배소가 노동자를 압박하는 주요한 수단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고용노동부는 2009년부터 올해 8월까지 사측이 노조 간부나 조합원을 상대로 청구한 손배소는 151건, 청구액은 모두 2752억70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2019년 12월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1심 판결 선고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조활동 손해배상·가압류 당사자 모임인 ‘노동현장 손배사업장 대응모임’은 18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대로는 기업의 불법에 저항한 노동자들만 처벌받고, 손해배상·가압류로 일상이 저당 잡히는 현실을 벗어나기 어렵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지난 4월 보고서 역시 “손배소의 목적이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다거나 청구 금액이 노조 활동을 위축시킬 정도로 크다면, 청구의 당부(정당성)를 인정함에 있어 신중한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청기업을 사용자로 보는 것을 “괜찮은 대안”으로 평가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 87호와 단체교섭에 관한 98호를 바탕으로 ‘하청노동자들이 원청 사용자를 상대로 노동3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가진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파업까지도 가능하다’고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이는 노란봉투법이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한다는 뜻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결사의자유’ 기본협약을 비준했다. 협약은 지난 4월 발효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권두섭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변호사는 “이번 개정안(노란봉투법)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범위를 그동안 축적된 대법원 판례를 법률에도 반영하여 명시하고 노동쟁의 대상을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위원회 등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하여 대부분의 파업이 쉽게 불법화되는 현실을 개선하도록 준비했다”고 밝혔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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