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미루는 '대형참사’…역대 정부 사례는?
박근혜정부, 세월호 참사 한 달 후 책임자 경질
윤석열정부, 이태원 참사 2주 가까이 사퇴론 일축
2022-11-10 16:54:46 2022-11-11 07:49:08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156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주 가까이 됐지만, 윤석열정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간 김영삼정부부터 정부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된 대형 참사 후 2주 넘게 책임자 경질이 없었던 사례는 박근혜정부에 이어 윤석열정부가 역대 두 번째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당시 경찰, 행정안전부 등 정부의 부실대응이 속속 드러나고 있음에도 행정부 최고수반인 윤석열 대통령은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오히려 “지켜보고 책임질 일이 있다면 지겠다”(한덕수 국무총리), 더욱더 열심히 하겠다”(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게 더 어려운 길인데 어려운 길을 선택하겠다”(윤희근 경찰총장)며 정부 책임자들은 사퇴론에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은 참사 발생 6일 만에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추모 위령법회’에 참석해 “죄송한 마음”이라며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고 했다. 하지만 야당은 종교 행사에서 사과한 점을 주목, 공식 석상에서 엄숙하게 대국민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윤 대통령은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아들과 딸을 잃은 부모의 심경에 비할 수 없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마음이 무겁다”며 “유가족께 위로의 말을 드린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 그러면서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점을 질책했지만, 윤 경찰청장에 대한 경질은 끝내 없었다.  
 
이는 박근혜정권을 제외하고 김영삼 문민정부 이후로 이례적인 일이다.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마다 역대 정권은 대통령이 정식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거나, 책임자 경질 수순을 밟아왔기 때문이다.
 
‘참사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김영삼정부는 빠른 경질과 대국민 사과를 했다. 1993년 10월10일 전북 부안군 위도에서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해 292명이 목숨을 잃자, 김 대통령은 사건 발생 8일 만에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해 “새 정부 출범 이래 대형 안전사고가 수차례 발생하고 있는 데 대해 국민 앞에 거듭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머리를 숙였다. 동시에 김 전 대통령은 같은 날 이계익 교통부 장관과 염태섭 해운 항만청장을 경질했다. 이들에 대한 경질설은 배가 침몰하고 난 뒤부터 제기됐지만, 김 전 대통령은 “사고 수습을 시킨 뒤 경질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 실제 경질 카드를 빼들었다.
 
다음 해인 1994년 10월21일에는 성수대교가 붕괴해 등굣길 학생들을 포함해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러자 김 전 대통령은 사건 발생 사흘 만인 24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또다시 머리 숙였다. 책임자 경질은 더욱 빨랐다. 김 전 대통령은 성수대교가 붕괴한 당일 이원종 당시 서울시장을 경질했다. 이영덕 국무총리 역시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사임을 요청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사고 수습을 해야 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반려했다. 
 
그 다음해인 1995년 6월29일에는 삼풍백화점이 붕괴해 502명이 숨지고 30여명이 실종됐다. 당시는 민선 1기 시장을 막 선출했을 때였다. 그러자 조순 서울시장은 사고 발생 이틀 만에 이동 제2부시장을 전격 경질했다. 
 
김대중정부 때는 1999년 6월30일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로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해 23명이 숨졌다. 김 전 대통령은 다음 날인 7월1일 합동분향소를 찾아 “대통령으로서 미안하다”고 유가족에게 사과한 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김종필 총리를 비롯한 내각에까지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 
 
1999년 10월30일에는 인천 인현동 호프집과 당구장 건물에서 불이 나 56명이 숨졌다. 당시 업소 주인과 경찰이 유착해 불법 영업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김 전 대통령은 13일 만인 11월12일 김광식 경찰청장을 경질했다. 
 
2003년 2월18일에는 대구 지하철 참사로 객차 12량이 불타고, 192명이 숨졌다. 당시 당선자 신분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사 발생 사흘만인 2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회의에서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 하늘을 우러러 보고 국민에게 죄인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이명박정부에서는 2010년 3월26일 천안함이 침몰해 46명이 숨졌다. 이 전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짓고 대국민 사과는 하지 않았다. 다만, 사고 발생 24일이 지난 4월19일 희생장병을 위한 라디오·인터넷 추모 연설을 통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서 무한한 책임과 아픔을 통감한다”고 했다. 
 
지난 5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제20대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환송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4년 4월16일에는 세월호가 침몰했다. 탑승자 476명 중 304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그러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33일 만인 5월19일에서야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그 가족들의 여행길을 지켜주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비애감이 든다”며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고개 숙였다. 
 
또 박 전 대통령은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경질했다. 당시 김장수 실장은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말로 여론을 악화시켰다. 남 원장은 초동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청와대와 정부의 미숙한 대응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됐으나 참사 책임으로 결국 경질됐다. 
 
문재인 대통령 때에도 사고는 이어졌다. 2017년 12월21일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사망했다. 또 2018년 1월26일 밀양 세종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47명이 사망했다. 이어 2020년 4월29일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로 38명이 사망이 생겼고, 2021년 6월9일 광주 학동에서 빌딩이 무너져 9명이 숨졌다. 2022년 1월11일 광주 화정 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로 6명이 숨졌다. 하지만 당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국민적인 문재인정부 책임론이 제기되지는 않았다.
 
한편, 대통령실은 “윤석열정부는 책임을 미룬 적이 없고, 박근혜정부에 이어 (책임을 미루는)두 번째라는 것도 사실무근”이라며 “(윤석열정부는)책임을 묻기 위해 어느 때보다 더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 중”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윤 경찰청장은 압수수색을 당하는 수사 대상인데, 공무원의 경우 수사 또는 징계 절차 중에는 마음대로 사표를 낼 수 없고, 임의대로 경질할 수 없기 때문에 직에서 물러난 뒤에 더 큰 책임이 드러날 경우 적절한 조치였는지가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반론했다. 
 
또 문재인정부도 대국민적 정부 책임론이 일었음에도 책임자를 경질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문재인정부 당시 밀양 세종병원 화재, 제천 화재 등으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대국민 사과나 책임자 경질이 없었다”라며 “당시 정부의 초기 대응의 미흡함을 지적하는 기사가 다수 있다”고 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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