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미국과 일본이 외교통상 협상을 통해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는데 우리만 진전이 없습니다. IRA 전기차 세액공제 지침만 해도 원안이 한국 배터리에 유리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미국과 협상을 통해 한국의 반사이익을 지웠습니다. 지난해 현대차가 IRA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미국 칩스법에 시달리는 와중에 일본만 좋아진 협상결과가 비교됩니다. 내달 대통령과 미국을 방문할 것으로 관측되는 4대그룹 등 재계 총수들은 여러 통상현안을 짊어져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이 일본에 특혜를 줘 한국의 반사이익이 사라졌습니다. 전날 일본은 미국과 협상 결과 IRA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당초 이번주 세부 내용이 공개될 IRA 전기차 세액공제 지침은 원안이 한국에 유리했습니다. 미국과 FTA 체결국가는 IRA 원산지 규정에서 혜택을 받는데 특히 배터리 메이저 한중일 3국 중 FTA체결국은 한국뿐이어서 반사이익이 기대됐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이번에 미국과 협상을 통해 FTA 체결국처럼 특혜를 받을 수 있는 협정을 체결한 것입니다. 한국이 다른 통상 현안에서 오랫동안 성과가 없어 외교력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계속해서 일본만 유리해지는 결과가 불만을 야기합니다.
국산 배터리 소재 유리했지만 희석
앞서 미국 재무부는 작년 12월 IRA 전기차 세액공제 지침이 확정되기 전에 기업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초안을 제공했습니다. 그 중 핵심 광물 원산지 요건을 보면,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핵심 광물 가치의 최소 40% 이상이 미국 또는 미국과 FTA 체결 국가에서 채굴 또는 가공되거나 북미지역에서 재활용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40%는 2023년 기준이고 매년 10%씩 올라가 2027년에는 80%까지 높아지게 됩니다. 규정이 까다로운 만큼 한국산 배터리 제조사들도 유불리가 뚜렷하지 않은 불확실성이 제기됐습니다. 그나마 한국이 미국과 FTA 체결국가인 점이 배터리 경쟁국가인 중국과 일본에 비해 유리해 일면 호재로도 해석됐습니다. 전체 배터리에 함유된 핵심광물 가치가 규제선을 만족하면 세액공제가 주어집니다. 전기차 배터리 전체 부품 가치 중 올해 기준 50% 이상이 북미지역 안에서 제조 또는 조립되는 경우에만 세액공제해준다는 규정도 있습니다. 이또한 규제 기준이 점진적으로 높아져 2028년부터는 100%가 돼야 합니다.
배터리 생산원가에서 양극재와 음극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생산 대부분은 한국, 중국, 일본이 담당해왔습니다. 국내 양극재의 경우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포스코케미칼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음극재도 SK, LG, 포스코 계열사들과 한솔케미칼 등이 투자하거나 투자검토해왔습니다. 만약 양극재와 음극재가 핵심 광물 원산지 규정에 적용받게 되면 FTA 체결국가인 한국이 유리해집니다. 그래서 일본이 미국과 FTA에 준하는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이번주 규정 발표 전까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많았으나 일본이 끝내 원하는 바를 쟁취했습니다. 최종 원산지 규정이 확정되기까지 아직 변수는 있지만 현재로선 한국의 반사이익이 희석되는 외교 결과입니다.
다른 각도에선 미국 의회가 IRA 취지를 훼손한다며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특혜에 대해 불만을 표하고 있습니다. 만일 의회 반대로 인해 역행하는 결과가 나온다면 자칫 한국산 배터리도 일본에 묶여 IRA 특혜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국내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배터리업체들로서는 IRA 규제 대응을 위해 그간 대규모 미국 투자를 감수해왔는데 외교전을 통해 불리해지면 맥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IRA가 국내 배터리 업계에 유리했다가 불리하게 해석되기도 하는 등 불확실성이 많은 것 같다”라며 “우리도 외교적인 성과가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현대차가 IRA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미국 칩스법에 따라 중국 투자가 제한되거나 수율, 판매가 등 영업비밀 공개를 요구받으며 시달리고 있는 실정에 일본만 진전된 외교성과가 비교됩니다.
지난 17일 방일 일정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부터),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나란히 행사에 참석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재계 총수들, 통상현안 짊어진 부담
이 가운데 내달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는 4대그룹 등 재계 총수들이 동행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그간의 외교 협상에 따른 소득이 없는 가운데 총수들이 현지에서 IRA, 칩스법 등 통상 현안을 직접 풀어야 합니다.
미국과의 통상현안 중 철강 수입 관세도 일본만 득을 봤습니다.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은 철강 관세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관세 때문에 수입 비용이 늘어난 미국 철강업체들이 법원에 소송을 걸었던 것인데 이를 통해 관세가 철폐될 길이 막힌 것입니다. 해당 관세는 트럼프행정부 시절 2018년 3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철강에 25%를 부과한 내용입니다. 한국은 트럼프정부와 협상해 수출 물량을 이전 70% 수준까지 쿼터를 낮추는 대신 관세를 면제받았습니다. 하지만 작년 바이든정부가 유럽과 일본에 대해서 관세를 완화시켜줘 쿼터 제한을 받아온 한국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졌습니다. 이후 한국정부도 한국산 철강에 대한 232조치 개선을 요청해왔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소득이 없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얽혔던 미국의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는 2018년부터 WTO 제소 분쟁 끝에 한국이 승소해 지난달 종료됐습니다. 미국 측이 최종 상소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세이프가드는 종료됐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미 규제를 피하기 위해 미국 현지에 생활가전 생산시설을 짓는 막대한 투자를 감수했습니다.
한편, 내달 재계 방미 일정도 방일 때처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관합니다. 전경련은 최근 회원사에 미국 경제사절단 모집 공문을 보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그룹은 회원사는 아니지만 방일 때처럼 미국 일정도 참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동안 정부 행사에 소외됐던 전경련이 잇따라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4대그룹 회원사 복귀 여부도 관심을 받지만 그룹들은 아직 복귀할 이유나 명분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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