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청계광장 인근에서 열린 후쿠시마 핵사고 12주년, 전국 곳곳 '탈핵 행동의 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일본이 올해 여름에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민건강·환경오염에 적신호가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할 정부의 대응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오염수 방류 문제보다 ‘후쿠시마산 수산물을 수입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본질을 비껴가는 대응을 하면서, 국내 여론 달래기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일본은 올여름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할 방침을 세우고 준비 막바지에 돌입했습니다. 도쿄전력은 오염수 방류를 위해 해저터널을 새로 구축,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방류해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 등을 희석시켜 수산물 오염 피해 등을 줄이겠다는 계획입니다. 도쿄전력은 올 6월까지 모든 공사를 끝내겠다는 방침입니다.
환경운동연합, 시민방사능감시센터 활동가들이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말고 장기 보관, 대통령은 일본 정부에 요구하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오염수, 1년 내 한국 도착 가능…플랑크톤 등 먹이사슬 통한 인간 도달도 문제”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137만톤의 방사성 물질 농도를 법적 기준치 이하로 낮춘 뒤 올 여름부터 30년에 걸쳐 바다에 방류합니다.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제거되지 않는 삼중수소는 기준치의 1/40 이하로 희석해 바다로 내보내겠다는 방침입니다. 삼중수소는 희석하더라도 체내에 투입되면 DNA 끈을 끊어놓거나, 기형·변형을 통해 암 발생 가능성을 높일 우려가 있는 물질입니다. 게다가 방사성 물질인 세슘, 스트론튬 등은 방류될 경우 플랑크톤·어류·해조류 등을 통해 먹이사슬로 연결,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수산물을 피해 섭취하더라도,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소금을 통한 피해를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오염수를 방류해도 해류를 따라 4~5년 뒤에나 한국에 도착한다며 이 시간 동안 오염 물질이 희석돼 방사능 수치가 검출되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는 <뉴스토마토>에 “미국 캘리포니아, 캐나다, 멕시코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해류가 4~5년이 걸리는 것은 맞다”면서도 “표층수와 같은 해류는 미국 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남쪽으로 가는데, 대만 해협을 통해 제주 등 우리 바다로 온다. 이게 1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때에 따라 태풍이 휘젓고 가거나 기상이변이 생길 경우 해류가 바뀌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한국으로 쓸려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민주당도 대응단(위원장 위성곤 의원)을 꾸려, 오는 6일 일본 후쿠시마를 찾아 방류 상황 등을 점검하고 항의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열린 신규투자 협약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대응에 손 놓은 정부?
정부는 오염수 방류보다는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문제에 더 집중한 해명을 내놓고 있습니다. 앞서 교도통신은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방일 중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를 접견하면서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해나가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대통령실은 같은 달 31일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 기간 중 일본 측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식,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검증, 그 과정에서 한국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는 3가지 조건을 분명히 했음을 알려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국내에 들어올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본질인 오염수 방류 보다는 수산물 수입 문제를 강조한 메시지를 낸 겁니다.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실사단에 참여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IAEA가 과학적이고 공정한 결과를 낼 가능성이 적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IAEA는 원전 정책 확대에 초점이 맞춰진 기구로, 오염수 방류 역시 위험성을 부각시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일본이 IAEA에 영향력이 높은 점도 불공정한 결과를 낼 가능성에 힘이 실립니다. 국제기구인 IAEA 특성상 분담금을 많이 낸 국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2021년 기준으로 IAEA 예산 8.32%를 부담해, 175개 회원국 중 미국(25.3%), 중국(11.6%)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내고 있습니다. 한국은 약 2% 수준으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게다가 고 아마노 유키야 IAEA 전 사무총장이 2009~2019년까지 재임한 10년 동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꾸준히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를 설득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 교수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반대가 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방류에 반대하는 태평양 국가들과 함께 국제해양법 재판소에 제소를 하는 방법이 남아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유엔해양법협약 제192조 2항에는 ‘각국은 자국의 관할권이나 통제 하의 활동이 다른 국가와 자국의 환경에 오염으로 인한 손해를 주지 않도록 보장하고, 또한 자국의 관할권이나 통제 하의 사고나 활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오염이 이 협약에 따라 자국이 주권적 권리를 행사하는 지역 밖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보장하는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 등을 근거로 다퉈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설명입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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