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 정원에서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 인사들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뉴시스 사진)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대통령실의 공천 개입 의혹 정황이 담긴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녹취록에 대해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의구심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해당 의혹이 사실이라면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불거진 박근혜정부 청와대 공천 개입의 데자뷔입니다. 당시에도 청와대 정무수석이 연루됐었는데, 이번에도 의혹의 중심엔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공천 개입으로 박 전 대통령을 수사했다는 점에서 이번 의혹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비판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7년 전 현기환 사태…박근혜 징역 2년 실형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대통령실의 공천 개입 의혹에 대해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일 페이스북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이 2016년 총선 당시 공천 개입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실을 언급하며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대통령실의 불법 공천개입이 아닌지, 공직선거법 제9조 2항에 따라 검찰과 경찰은 신속, 공정하게 수사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도 이날 공천 개입으로 처벌받았던 박 전 대통령 사례를 언급하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이진복 수석이) 당무에 개입한 의혹이 매우 짙고, 대통령이 정치 중립을 위반한 것은 중대한 범죄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며 "국회 운영위에서도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공천 개입으로 처벌된 대표적인 사례가 박 전 대통령이란 점에서 여야 모두 이번 의혹을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한 혐의로 법원에서 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에도 청와대 정무수석이 의혹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현기환 정무수석을 통해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들이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2015년 11월에서 2016년 3월까지 국가정보원 특별사업비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이들의 당선 전략을 세우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전직 대통령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과거만 하더라도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임하며 공천권을 쥐었습니다. 노무현정부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고 권력 분산 등을 위해 당정분리가 이뤄졌습니다. 당시 법원은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함으로써 과거 여당의 공천에 대통령의 뜻이 크게 작용하는 일이 많았던 관행이 근절돼야 함을 분명히 알렸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박 전 대통령의 공천 개입 등에 대한 수사를 지휘한 사람이 윤 대통령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중앙지검장일 때는 박 전 대통령을 공천 개입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검사 윤석열'로서 존재감을 종종 드러낸 것도 '선거 개입 수사' 때였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선거 개입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3월 전당대회 기간에도 대통령실 개입으로 나경원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후 안철수 의원이 지지율 1위로 떠오르자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으로 규정했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전언이 나오며 안 의원은 당시 예정된 다수 일정을 돌연 중단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사람도 이진복 수석이었습니다. 이 수석은 당시 안 의원을 겨냥해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를 남겼습니다. 이번에 제기된 대통령실 공천 개입 의혹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지난 2일 국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당사자로 지목된 이 수석과 태 최고위원은 여전히 녹취록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태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녹취록에 대해 "회의 참석자 중 누군가가 녹음하여 불순한 의도로 유출한 것"이라며 "다시 한번 이 수석과는 최고위원 발언 방향이나 공천에 대해 그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습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당 윤리위원회에 태 최고위원의 녹취록 논란 등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병합해 판단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날 본지와 한 통화에서 "이번 녹취록으로 인해 대통령실이 벌써부터 공천 개입에 착수한 상황이 돼 버렸다"며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여당 내) 사람들은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녹취록 공개가 공천 불안감 확산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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