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효(오른쪽) 국가안보실 제1차장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출범식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윤석열정부 외교·안보에서 완전히 사라진 말이 있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 묻는 이도 없고 설령 누가 묻는다 해도 성의 있는 대답을 기대하기는 난망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작전지휘권 귀속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된다. 명분이나 이념 등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한 게 국내 언급으로는 마지막입니다. 전작권 전환 사안을 '이념'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난해 5월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연합방위태세 제고를 통해 억제를 보다 강화할 것을 약속하고,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였다"고 발표한 것을 마지막으로 정부 차원의 언급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과 '워싱턴 선언'에서는 '재확인'이라는 형식적인 언급마저도 없었습니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전작권 전환 문제에 극히 부정적입니다. 2007년 3월에 <조선일보>에 쓴 '전시 작전권 전환 평시가 더 문제다'라는 시론에서 "전작권 전환문제는 앞으로 전쟁 상황이 아닌 평시에도 한미 안보관계를 괴롭히는 골칫거리를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합니다. 김영삼정부가 한 평시작전통제권 환수마저 문제 삼는 것으로 읽힙니다.
그는 2010년 2월 이명박(MB)정부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시절 '전작권 특사'로 나서 당시 제프리 베이더 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등 백악관 관계자들을 만나 '전작권 전환 연기'의 물꼬를 트는 등 맹활약합니다. (<중앙일보> 2010년 6월 28일 '5개월간 전작권 전환 연기 극비 협상 막전막후')
김태효의 스승 이상우 "우리 군 전쟁 기획 해 본 일 없고, 전쟁 지휘할 사람도 없어"
그의 서강대 학부 시절 스승으로 현재까지도 각별한 관계인 이상우(85) 신아시아연구소 이사장은 훨씬 노골적입니다. (관련 기사:
미국과 중국은 ‘냉전’ 중인가)
"(전시작전통제권은) 우리가 받을 수 없습니다. 군은 망신스러워 그렇게 말 못 할 거예요. 우선 우리 군은 전쟁 기획을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장성도 군단 규모 지휘까지만 훈련받았죠.…전쟁이 나면 우리가 이길 수 없습니다. 전쟁을 지휘할 만한 사람도 없어요."(<더 스쿠프> 2017년 10월 인터뷰)
전작권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는 건데, 그가 평범한 일개 학자라면 이렇게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2009년 12월에 MB정부가 만든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을 맡았고 석 달 뒤 천안함 폭침 사건이 터지자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까지 겸임하면서, 안보 분야 전체에 대한 구조조정을 맡았습니다. 그는 의장을 맡으면서 "창군 이래 국방정책 기조가 방어 위주였기 때문에 (도발이) 반복된 것"이라면서 "이른바 '억지 전략'으로 국방정책의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처럼 한국군을 획기적으로 바꿀 힘과 기회를 가져놓고도 8년 뒤에는 ‘전작권을 얘기할 만한 수준도 안 된다‘고 깔아뭉개고 있습니다. 뭘 '점검'하고 뭘 '선진화'한 것일까요?
남북한의 국방비 규모는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한국 군사력을 세계 6위권으로 평가한 미국의 글로벌파이어파워(GFP)는 2020년 북한 국방비를 35억달러, 남한은 480억달러로 분석합니다. 그해 북한의 전체예산이 87억6000달러(한국은행 추정치)이니, 남한 전체 예산이 아니라 국방비가 그 5배가 넘습니다. 북한 핵 문제가 심각한 것이 사실이나, 지난 4월 '워싱턴 선언'에서 나온 것처럼 한미연합 확장억제 전략으로 억제 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이런 데도 한국군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은 국가주권의 기본인 전작권을 영원히 미군이 갖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봐야 합니다.
사람을 뺀 모든 것을 중국에 의지해야 했던 광복군도 '중국의 노예군대'가 될 수 없다며 끈질긴 교섭 끝에 작전권을 확보했고, 베트남파병 한국군도 피해 최소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독자 작전권을 얻어냈습니다. 채명신 주월한국군 사령관은 "4년 8개월간 미군으로부터 독자적인 작전권을 얻어내 헬리콥터에 의한 공중기동전, 신형 장비 숙달 등 현대전 수행을 위한 학습을 톡톡히 했다"면서 "파병 전까지만 해도 미군 군사 교리에 100% 의존하던 한국군이 전략·전술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출범식에서 발언을 마친 뒤 박수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관진 국방혁신위 부위원장 “당장에라도 싸울 수 있는 강한 군대”…전작권도 없이?
최근에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을 맡았습니다. 윤 대통령이 그를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분"이라고 치켜세우고, 부위원장으로 호칭했습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 등 장관급 인사들이 위원이니, 이 위원회와 김 전 장관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줍니다. 마치 2010년 이상우 국방총괄점검회의 의장의 등장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김 전 장관은 국방혁신위 첫 회의에서 "당장에라도 싸울 수 있는 군이 되도록 준비하는 동시에 작지만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첨단 기술을 군사작전에 접목하는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전부터 그를 '북한이 가장 무서워하는 군인'으로 불렀으나, 북한이 이런 표현을 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의도된 '상징조작'이거나 호사가들의 말장난일 것입니다. 설령 그가 북한이 아니라 우주가 무서워하는 군인이라 해도 작전권도 없는 군대를 갖고 어떻게 "당장에라도 싸울 수 있는 강한 군대"로 만들겠다는 것인가요? 국방 '혁신'의 최우선 과제가 바로 이 문제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