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김해=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를 하루 앞둔 22일 경남 봉하 마을은 전국에서 몰려든 시민들로 북적였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와중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은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마을 곳곳에는 올해 추도식의 주제이자 노 전 대통령의 저서 '진보의 미래'에 나온 구절인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는 글귀가 적힌 펼침막이 내걸렸습니다. 윤석열정부 집권 1년이 지난 시점에 '노 전 대통령이 더 그리워진다'는 추모객들의 헛헛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듯 보였습니다.
봉하 마을 입구에서 2000원에 판매하는 국화꽃이 시민들 손에 한 송이씩 들려 있었습니다. 국화꽃을 판매하고 있는 한 상인은 "어제, 그제 사람들이 많이 왔다"며 "여느 때와 비교가 안 된다. 4~50% 정도 더 많이 오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22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입구에 노란 배경의 방명록이 준비돼 있다. (사진=뉴스토미토)
한손엔 국화꽃, 한손엔 우산…비 내리는 와중에도 추모 발길
이날은 주말 휴일이 막 끝난 월요일 평일 오후였는데도 시민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은 마을 앞 지정 주차장과 공터를 메운 채 길게 꼬리를 물었습니다. 시민들은 묘역에 들어서기 전 안내소에 있는 노란 배경의 방명록에 '대통령님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글을 남겼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생가 앞에 있는 포토존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시민들의 줄을 이었습니다.
대통령 묘역에는 참배객들이 한 송이씩 두고 간 흰 국화꽃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한 손에는 우산을, 한 손에는 국화꽃을 든 채 숙연한 마음으로 헌화 차례를 기다리는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광주에서 온 140여명의 시민들이 단체로 흰 우의를 입고 참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가깝게는 대구와 울산, 경주 등 영남지역 방문객부터 멀게는 서울과 인천에서 찾아온 시민들도 보였습니다.
22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은 시민들 모습이다. (사진=뉴스토마토)
인천에서 온 70대 남성 류모씨는 "휴가를 내서 어제 왔다"며 "노 전 대통령이 그리워서 찾아오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올 때마다 '진짜 노 전 대통령같이 서민적인 대통령이 앞으로 나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며 "이 양반이 대통령 시절에 이런저런 말도 많았지만 서민을 위해서 일한 대통령은 지금까지 노 전 대통령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22일 추모객들이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봉하 마을을 찾은 시민들은 대부분 그 어느 때보다도 올해 '노 전 대통령이 그립다'고 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인 윤석열 대통령과 비교했을 때, 현 한국의 상황을 비춰봤을 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더 크게 사무쳤다고 합니다.
경주에서 온 50대 여성 한모씨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일을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시어머니의 생신일과 노 전 대통령 서거일이 같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시어머니의 생신 밥상을 차리던 때 남편으로부터 '너 좋아하는 대통령님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한씨는 요즘 들어 노 전 대통령이 더 그립고 생각난다고 합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현 대통령과 너무 달라서 더 생각난다"며 '노 전 대통령 때는 제가 하고 싶은 말도 자유롭게 했는데 요즘에는 말도 못 하게 한다. 너무 제재를 많이 가한다"고 토로했습니다.
"경제도 안 좋고…요즘 같은 때 더 생각난다"
울산에서 온 50대 남성 박모씨도 올해 유독 노 전 대통령이 그립습니다. 그는 "경제도 안 좋고 이것저것 나라가 힘들어서 노 전 대통령이 더 생각이 난다"고 밝혔습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존경심이 생겼다는 한 시민도 있었습니다. 대구에서 온 40대 남성 차모씨는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살아계실 때는 모르고 있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 노 전 대통령이 어떤 업적을 냈는지 보니 존경할 만한 분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깨어있으라는 노 전 대통령의 말에 깨어있음을 느끼려고 오늘 오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2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이 열릴 무대 모습이다. (사진=뉴스토마토)
추도식이 진행되는 장소에선 행사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무대 위엔 역시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었고, 무대 아래에는 3000석의 의자가 준비됐습니다.
추도식 행사장에서 만난 하승창 노무현시민센터 센터장은 "오히려 요즘 같은 때 훨씬 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 최후 보루'라는 노 전 대통령의 말씀이 더 울림을 준다"며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는 이런 문구도 시민들의 조직된 힘들이 쌓이는 시간이라고 본다. 조금 더뎌 보여도 결국은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이 말이 와닿는 때가 아닌가 싶다"고 밝혔습니다.
김해=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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