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패키지 게임'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CD나 DVD, 한 권의 책처럼 완성된 서사를 구매한다는 느낌이 들지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게이머들은 작품 발매 전부터 DLC(DownLoadable Content)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말로 '내려받을 수 있는 콘텐츠'인 DLC는 인터넷 속도가 빨라진 2000년대 이후 시장에 안착했습니다. 4일 PC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에서 'DLC'를 입력하니, 검색 결과 1만1875개가 나왔습니다.
DLC는 본편의 결말까지 재밌게 즐긴 이들에게 무료 또는 유료로 부가 콘텐츠를 제공하는 의미가 큽니다. 패키지를 판 다음, 내려받을 수 있는 콘텐츠를 내는 순서니까요. 캐릭터 의상을 예쁘게 꾸미거나, 결말 이후 세계관을 더 즐길 수 있는 부가 임무를 제공하는 것 등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게임사들이 패키지 게임의 진짜 결말을 출시 수개월 뒤에 따로 파는 관행을 보이면서, 게이머 원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사례는 지난달 29일
크래프톤(259960)이 '칼리스토 프로토콜' 최종 DLC로 낸 '마지막 전송'입니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본편 정가는 7만4800원이고 이번 DLC는 1만6500원입니다. DLC를 미리 사 두는 '시즌 패스'는 3만7000원이었습니다. 지금은 본편과 시즌패스가 반값으로 떨어졌습니다.
크래프톤 산하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스튜디오가 만든 ‘칼리스토 프로토콜’ DLC ‘마지막 전송’. (사진=칼리스토 프로토콜 화면)
이런 상술은 온라인 비중이 커진 판매 환경과 관련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를 보면, 게이머 2417명 가운데 PC 게임 구매 경험이 있는 사람은 57.8%입니다. 그 중에서 스팀 등 온라인에서 구입했다는 응답은 75.1%에 달했습니다. 현재 모바일과 콘솔, PC 간 플랫폼 연결이 일반화되기도 했고요.
패키지 게임은 실시간 서비스하는 온라인 게임과 수익 구조가 다릅니다. 국내 게임사들이 만드는 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MMORPG)은 지속적인 패치와 대규모 업데이트 등으로 과금 요소를 계속 만들어 수익을 냅니다.
반면 패키지 게임은 몇 년을 공들여 만든 뒤 출시하면 끝입니다. 그래픽과 서사, 게임성 등 게이머들의 기대치를 충족해 단기간 대박을 내야 합니다. 개발 기간이 몇 년이든 콘텐츠 소모 속도는 길어야 수십시간에 불과합니다.
패키지와 온라인 서비스의 결합도 한 방법입니다. 블리자드가 '디아블로IV' 출시를 앞두고 넥슨에서 쓰던 개념인 '라이브 서비스' 도입을 발표한 점이 달라진 패키지 시장 환경을 보여줍니다.
게임 업계 한 관계자는 "지속적인 과금이 가능한 온라인 게임과 달리, 패키지 게임은 한 번 팔아 번 돈으로 후속작 개발 투자비와 몇 년치 직원 임금을 확보해야 한다"며 "오랜 시간 힘들게 만든 세계관이 있는데, 이를 활용하는 DLC로 추가 매출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게임사들이 부가 콘텐츠가 아닌, 결말을 유료 DLC로 판매하면서 '덜 만든 게임을 팔고 본다'는 불신이 게이머 사이에 자리잡은 겁니다. 공포 액션 게임의 새 장을 연, EA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는 2편까지 본편에서 모든 결말이 났습니다. 하지만 EA는 2013년 나온 3편에서 DLC로 결말을 팔아 논란이 일었습니다.
개발사가 덜 만든 게임을 먼저 내는 세태는 '패키지 게임은 완성된 서사'라는 믿음을 깨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헐리우드 배우들이 그대로 출연한 실사 그래픽으로 주목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데드 스페이스 1편 개발자 글렌 스코필드가 이끄는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스튜디오 작품이란 점이 전세계 데드 스페이스 팬의 기대감을 높였죠.
하지만 본편에서 주인공이 바이러스 감염 사태에 죄책감을 느끼는 과정이 억지스럽고, 결국 스스로 사지에 남는 선택도 공감 받지 못했습니다.
부실한 서사를 만회할 기회는 진짜 결말이 담긴 이번 DLC였는데요. 결말을 본 게이머 사이에선 개발사가 본작의 흥행 여부로 결말을 결정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옵니다. 업체가 패키지 게임을 쪼개 팔다 보니 생긴 불신의 단면입니다.
반면 본편에 결말을 충실히 담은 패키지 게임이 모범 사례로 주목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스퀘어 에닉스가 출시한 '파이널 판타지 XVI'입니다. 평론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 88점을 받았고, 게이머들 역시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발매 첫 주만에 300만장이 팔렸습니다.
스퀘어 에닉스의 '파이널 판타지 XVI' 주인공 클라이브 로즈필드. (사진=플레이스테이션 웹사이트)
최근 이 작품 결말을 본 한 게이머는 "DLC가 필요 없을 정도로 본편에서 이야기를 깔끔히 마무리했다"며 "개발사가 직전 작품의 실패를 딛고 열심히 준비해 명작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습니다. 패키지 게임 본연의 '완결성'에 충실한 만큼, 부가 콘텐츠를 담은 DLC도 기대된다는 반응입니다.
여기서 DLC의 명암이 드러납니다. 100명이 같은 게임을 샀다고 한다면 본편의 재미가 어느 정도였냐에 따라 10명이 이탈하는 정도에 머물 수도 있고, 대부분이 이탈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습니다. 본편에 만족한 사람이 많을수록 DLC가 더 많이 팔리겠지요. 결국 DLC로 결말을 따로 파는 전략을 우선하기보다 본작의 밀도에 쏟는 정성이 게임, 더 나아가 지적재산권(IP)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학계에서는 패키지 게임 결말을 쪼개 파는 관행이 게이머와의 신뢰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 숙고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옵니다.
정정원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산학협력교수(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총무이사)는 "법률상 문제는 없지만 이렇게 파는 사업 모델이 관행으로 정착된 것이 과연 이용자를 위한 것인지, 정당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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