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연석 기자] 임기가 24일로 만료된 김명수 대법원장의 후임으로 지명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 동의가 지연되면서 사법 공백이 현실화됐습니다.
25일 대법원에 따르면 대법관 13명 중 가장 선임인 안철상 대법관이 이날부터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습니다. 권한대행 체제는 1993년 김덕주 전 대법원장이 부동산 투기 문제로 사퇴하면서 최재호 대법관이 2주간 권한을 대행한 이후 30년 만에 처음입니다.
권한대행 체제 한계
대법원장 공백에 따른 가장 큰 문제로 대법원의 본령인 전원합의체 선고가 꼽힙니다. 전원합의체는 사회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나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대법관들 모두가 참여해 선고합니다. ‘전원합의체 재판장’ 역할은 대법원장이 맡습니다.
문제는 대법원장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가 명확하게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권한대행자가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맡을 수 있을지에 대해 좀 더 안정적·보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법적으로 권한대행이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하는 게 문제는 없지만, 권한대행 체제에서 전원합의체가 이루어진 선례가 드물고, 공정성·정당성 측면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권한대행의 역할을 최소화할 경우 대법원의 본령인 전원합의체 선고가 지연될 전망입니다.
대법원장 공백은 차기 대법관 선정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당장 내년 1월1일자로 안 권한대행과 민유숙 대법관이 퇴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대법관 후보자 제청’은 대법원장의 몫입니다. 지금까지 권한대행이 대법관 후보자 제청을 한 사례는 없습니다.
또 내년 2월에는 전국 법관 정기 인사도 예정돼 있습니다.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받으면, 대법원장이 법관을 임명하고 보직을 결정하게 돼 있습니다. 대법원장 공백 상태에서는 사실상 법관 인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대법원장 공백 장기화 전망
이처럼 상황이 시급한데 문제는 대법원장 공백기가 길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당초 국회는 이날 예정된 본회의에서 이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하기로 했으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과 민주당 원내지도부 사퇴 여파로 보류됐습니다.
추석 이후엔 국회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어 다음 본회의는 11월에야 열릴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이때 본회의가 열린다 해도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가결될지도 불투명합니다. 민주당은 이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판정을 내린 인사청문회 보고서를 통과시켰습니다. 야당의 동의가 없다면 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한편 대법관들은 이날 오후 긴급 대법관회의를 열고, 권한대행이 대법원장만이 맡던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맡을 수 있는지 여부 등 대법원장 고유 권한을 어느 범위까지 행사할지를 논의했습니다.
대법원 측은 “이날 회의에 참석한 12명의 대법관들은 구체적인 권한 대행 범위 등에 대해서는 향후 사법부 수장 공백 상황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추가로 논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대법원장) 공백 상황이 길어질수록 대법원장 권한 대행자의 권한 행사에 여러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며 “후임 대법원장에 대한 임명 절차가 조속히 진행되어 재판지연 등 국민들의 불편이 최소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 지연으로 30년 만에 대법원장 공석 사태를 맞이한 대법원이 25일부터 기약 없는 권한대행 체제에 돌입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만료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대법관 13명이 오후 긴급 회의를 진행한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사진=뉴시스)
유연석 기자 ccb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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