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형제 폐지론자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폐지론자에 가깝습니다. 가깝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표현하는 건 아직 그 사항에 대해 100% 확신을 가질 만큼 알거나 공부하지 않은 탓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설문조사를 하게 되거나, 혹은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저는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형제에 대한 생각이 폐지론으로 기울게 된 건 대학 시절 본 영화 ‘데이비드 게일’(2003)의 영향이 큽니다. 그저 반전이 강한 내용이라고 소개받고 보게 된 영화의 후반부 10분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이전까진 흉악 범죄자라면 사형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때부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사형폐지운동단체 회원인 주인공은 같은 단체 회원이자 친구인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사형당합니다. 그가 사형당한 후 진실이 밝혀지는데, 실제로는 시한부 인생의 친구와 짜고 자살을 살인처럼 꾸몄습니다. 사형 판결의 ‘오판 가능성’을 주인공과 친구가 몸으로 직접 증명하려 했던 겁니다.
설정이나 전개가 다소 극단적인 부분도 있지만 실제로 인간이 관여하는 재판에는 오판의 여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인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리 사법제도는 판결의 불완전 가능성을 인정하기에 ‘재심’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가까운 예로 2020년에 재심을 통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 누명을 벗은 윤성여씨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형이 집행된 경우라면 재심은 의미가 퇴색됩니다. 특히 독재정권 시절에는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정치적 이해관계만으로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했습니다.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죽인 1958년 진보당 사건,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조봉암은 2011년, 인혁당 재건위는 2007년 재심에서 각각 무죄 판결이 났지만 이미 당사자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난 뒵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흉악범죄를 볼 때마다 저 역시 함께 분노하며, 정말 사형제가 없어도 되는 건가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럼에도 일말의 오판 여지가 있다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만큼은 사법부도 국가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이런 오판이 옛날 일이고 지금은 다르다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에 의해 증거 또는 범인이 조작될 가능성은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유효합니다. 심지어 돈과 빽이 있으면 죄가 없어지거나 줄어드는 경우도 여전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국가에게 사람의 목숨, 아니 나의 목숨을 맡길 수는 없다는 게 제가 사형제를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덧말. 최근 법무부가 제출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는데, 그나마 지금이 사형제 폐지를 진지하고 심도 있게 논의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동안 사형제를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무산되기를 반복했습니다.
가석방 없는 무기형 역시 출소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죽기만을 기다리게 하는 ‘느린 사형’이라는 지적이 나오곤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형제 폐지를 전제로, 다수의 인명을 살해하고 살해 방법이 매우 잔혹한 사건에 한해 한정적으로 선고될 수 있도록 제한한다면, 도입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유연석 법조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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