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주요 그룹 인사 중 화두는 발탁이나 승진도 아닌 은퇴였습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의 용퇴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심지어 은퇴 후에도 포스코그룹 회장 부임설이 따라붙습니다. 이런 화려한 경력은 권 부회장이 거쳤던 기업들의 실적성과 덕분일 것입니다.
하지만 권 부회장도 여러 단면이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에 부임한 후 물적분할에 따른 이중상장 논란을 치렀습니다. 흔히 박수칠 때 떠나라는데 올해가 권 부회장 경영성과의 절정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중국이 앞서가는 구도가 더 사나워졌습니다. 중국이 앞으로도 세를 키운다면 패스트팔로어를 택했던 삼성이 되레 생존엔 유리해 보입니다. 삼성은 전고체배터리란 반전카드도 먼저 준비해왔습니다.
이처럼 그룹 인사 배경을 실적만으로 얘기할 순 없습니다. 그러면 주요 그룹들이 연말결산실적이 나오기 전 3분기 후 인사를 발표하는 것도 어찌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적 외 어떤 면을 보는 것인지 돌이켜보면 회장님 밀실인사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막상 실적 발표 때는 성과주의를 표방합니다.
그나마 정당한 인사평가로 신뢰할 수 있는 게 실적인데 그 속에도 허가 많습니다. A기업은 3분기 영업손실에도 당기순이익은 흑자전환했습니다. 그런데 내실은 3분기 특별이익이 발생한 덕분이었습니다. 자산 매각 등 현금이 들어온 일시적 효과를 봤다는 것입니다. 단기실적을 올리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외상매출을 늘리거나 판관비를 줄이고 감가상각비를 전과 달리할 수도 있습니다. 수출업자들은 정부도 중요한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실적을 올리고 싶을 때 통관시기를 조정했다고 합니다. 다음달이면 드러날 눈속임이지만 선거날만 지나면 관심은 식습니다.
인사철을 앞두고도 기업이 실적을 올리려 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국내 상장사 다수는 4분기 실적 발표를 건너뜁니다. 4분기 별도 실적 공시 없이 연간 실적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니 4분기만 되면 실적이 하락하는 경향도 나타납니다.
연말 인사에서 수장이 바뀔 경우엔 새 부임자가 은밀하게 빅 배스를 하기도 합니다. 특정 업종에선 관행처럼 인식돼온 부분입니다. 기업 내부적으로 4분기 실적 하락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닙니다. 세금을 덜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을 종합해 보면 3분기 후 인사를 하는 것에 어떤 의도를 의심해볼 개연성이 생깁니다.
외국계 기업 종사자가 자신이 유럽 기업과 미국 기업에서 각각 경험했던 차이를 얘기해줬습니다. 유럽 기업은 결재 과정이 복잡해 처리속도가 느렸다고 합니다. 반면 미국 기업은 속전속결로 빨랐다고 합니다. 보기엔 미국 기업이 더 바람직한 것 같지만 유럽 쪽은 신중하고 정확하며 투명하고 실수를 줄이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그 반대의 단점이 있는 것이죠. 그룹 인사 측면에서 내년 준비를 빨리하는 게 무조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재영 산업1부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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