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으로 이사한 날이었습니다. 짐 정리를 마친 후 엘리베이터에 타니 바로 윗집에 살고 있는 가족이라면서 반갑게 인사하더군요. 인상 좋은 부부는 남자아이 둘에게 인사를 시키고는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지방이라 확실히 인심이 더 좋은가보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파트에서 서로 인사하고 지내면 좋지 하며 기대도 하게 됐죠.
하지만 인상 좋은 가족의 얼굴은 다른 모습으로 매일 밤 자꾸 떠오르게 됐습니다. 쿵쿵, 쾅쾅, 두 아이의 싸우고 울부짖는 소리가 하루도 빠짐없이 들렸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다가 저녁에 쉬고 싶은데 그래도 참았습니다. 참고 참고 또 참아봤죠. 그러던 어느 날 참을성의 한계를 느끼고 맙니다. 층간 소음에 '칼부림'까지 난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겠다 싶었죠. 그래서 저는 칼 대신 '펜'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간 참았던 이야기와 조심해 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편지지 그득 빼곡히 담은 후 윗집 현관문에 붙여놨습니다.
다음날 저희 집 현관문에도 답장이 붙었습니다. 저 만큼이나 많은 글자가 편지에 담겨 있더군요. 사과를 기대했던 저는 더 화가 났습니다. 미안하다는 답이 올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핑계만 가득한 내용이었어요. 한 번 더 편지를 썼습니다. 약간 감정도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2~3번 편지가 왔다 갔다 했는데요. 결론은 저도 좀 더 참아보고, 윗집은 더욱 노력해 보겠다는 이야기로 끝이 났고요.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확실히 층간 소음이 덜 해졌고, 저도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이 커졌습니다.
그런데 그것 아세요? 만약 제가 손 편지로 해결하지 않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등 복수로 맞받아쳤으면 범죄자가 될 뻔했다는 사실을요. 최근 층간 소음에 보복하려고 고의로 큰 소리를 반복해서 냈다면 ‘스토킹’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거든요. 이웃을 괴롭힐 의도로 일부러 소음을 일으키는 행위를 지속했다면 스토킹 범죄가 성립된다는 대법원 첫 판단입니다.
층간 소음 문제가 사회적으로 충격을 준 계기는 바로 10년 전 발생한 2013년의 서울 면목동 아파트 살인사건입니다. 연휴 때 아버지 집에 놀러 온 형제가 아랫집 남성에 의해 흉기로 살해당한 것인데요. 아버지는 두 아들을 잃고 비통해 하다가 19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 사건은 층간 소음 기준 제정의 계기가 되기도 했고, 국민과 정부가 층간 소음에 대해 심각한 문제임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층간 소음에 의한 범죄나 민원은 폭증하고 있고, 이제는 층간 소음 복수가 되레 처벌을 받는 시대까지 온 겁니다. 인터폰→방문→보복 소음→불상사라는 층간 소음 사건의 전형 패턴이 된 거죠.
최근에는 정부가 층간 소음을 잡기 위해 '아파트 준공 승인 불허'라는 카드까지 꺼냈습니다. 건설사들의 책임을 강화한 것은 긍정적일 수 있다 하더라도 기존 층간 소음 측정 방식이나 기준으로 층간 소음을 제대로 잡을 수 있는 것인지 문제 제기는 여전합니다. 신축 아파트 관리를 강화해도 구축 아파트와 벽간·층간 소음에 취약한 원룸과 오피스텔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층간 소음'의 기준은 민감도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사회·문화적 교육 등을 통해 풀어야 하기도 합니다. 결국 해결책은 훨씬 복잡하겠죠. 대책이 보다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하늬 콘텐츠·편집 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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