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주 선임기자] 이원석 검찰총장이 "인사는 인사, 수사는 수사"라고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수사할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건희 수사지휘권'에 발목이 잡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문재인정부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발동한 '수사지휘권' 때문입니다.
당시 추 장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 윤 총장 주변 사건 관련 5건에 대해서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배제시켰는데요, 정권이 교체돼도 이와 관련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이 회복되지 않은 겁니다. 김 여사 수사와 관련해서 검찰총장이 ‘식물총장’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힘든 구조입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와 직무집행 정지 명령을 내린지 사흘이 지난 27일 오전 추 법무부장관(사진 위)이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윤 검찰총장 지지자들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 세워둔 입간판 모습. <사진=뉴시스>2020.11.27.
‘추·윤 갈등’ 정점 속 검찰총장 지휘권 박탈
추 장관과 윤 총장이 대립한 '추·윤 갈등'이 정점으로 향하던 2020년 10월19일. 추 장관은 윤 총장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합니다. 라임 로비 의혹 사건과 검찰총장 가족, 주변 사건 관련 5건에 대해 윤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배제시킨 겁니다.
사건은 △라임자산운용 사건 관련 검사, 정치인들의 비위 및 사건 은폐, 짜맞추기 수사 의혹 건 △코바나 관련 협찬금 명목의 금품수수 건 △도이치모터스 관련 주가조작 및 도이치파이낸셜 주식 매매 특혜 의혹 건 △요양병원 운영 관련 불법 의료기관개설, 요양급여비 편취와 관련 불입건 등 사건 무마 의혹 및 기타 투자 관련 고소 건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수수사건 및 관련 압수수색영장 기각과 불기소 등 무마 의혹의 5건입니다.
이 가운데 윤 총장 본인과 배우자, 가족의 연관 의혹을 받는 사건이 라임자산운용을 뺀 4건입니다. 당시 추 장관은 수사지휘서에서 "(윤 총장) 본인 및 가족과 측근이 연루된 사건들은 검사윤리강령 및 검찰공무원 행동강령에 따라 회피해야 할 사건이므로 수사팀에게 철저하고 독립적인 수사의 진행을 일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검찰총장은 서울남부지검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대검찰청 등 상급자의 지휘 감독을 받지 아니하고 독립적으로 수사한 후 그 결과만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도록 조치한다"는 내용도 지휘서에 남겼습니다.
검찰청법 12조에 따르면 검찰총장은 대검찰청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고 검찰사무를 총괄하며 검찰청의 공무원을 지휘·감독합니다. 대한민국 검찰청과 검사들의 수장이면서 전국 검사들의 범죄 수사, 기소, 공소유지, 형집행을 지휘·감독합니다. 그런데 총장의 전횡을 막기 위해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검찰청법 제 8조)할 수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추 장관은 김 여사 수사와 관련해 검찰총장이 일체 관여하지 못하게 한 겁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24.05.14
아직도 유효…총장 지휘권 회복 공론화 필요도
문제는 문재인정부에서 윤석열정부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추 장관 당시의 검찰총장 수사지휘권 박탈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겁니다. 추 장관 이후 후임 법무부 장관들이 이 문제를 흘려보내고 회복시키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현재의 이원석 총장도 김 여사 관한 수사에 관여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지난 대선 정국에 민주당이 이 문제를 간과했고, 윤석열정부에서도 굳이 검찰총장 수사지휘권을 부활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휘권 회복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서로 입장을 정리해 서면으로 지휘권을 회복시키면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이 총장과 의견을 교환해 지휘권 복구를 추진하면 됩니다.
하지만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선 박 장관이 이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회복시켜 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이 총장은 김 여사의 의혹에 대해 수사할 의지를 보이는 반면 윤 대통령은 배우자의 수사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겁니다. 박 장관으로서는 윤 대통령의 의중을 거스르면서 지휘권을 회복시켜 주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입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굳이 검찰총장 수사지휘권 회복이 되지 않더라도 김 여사 수사를 책임진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제대로 수사 지휘를 하면 된다”면서도 “송경호 전 지검장이 수사에 속도를 내려하자 갑자기 교체된 배경 등을 고려하면 수사 강도를 높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총장이 진심으로 김 여사에 대해 수사할 의지가 있다면 수사지휘권을 회복시켜 달라고 공론화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오승주 선임기자 seoultubb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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