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바위그림)알타피오르에 새겨진 옛 북극 주민의 풍속화
(백야의 땅, 박성현의 바위그림 시간여행-28)
2024-06-10 06:00:00 2024-06-10 06:00:00
북극 아래에 위치한 페노스칸디아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핀란드, 러시아의 콜라반도와 카렐리야 지역을 가리킵니다. 세계 곳곳에서 선사 인류의 바위그림이 발견된 것처럼, 이곳에도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이 남긴 바위그림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가의 돌에 무엇을, 왜, 새겼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질문을 품은 채 떠난 여정, 러시아 카렐리야의 오네가호수와 비그강, 콜라반도의 카노제로호수에 새겨진 바위그림과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를 향해 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알타 암각화의 구성과 발견사
 
알타는 노르웨이 최북단 핀마르크주의 알타 지방자치단체에 속하는 소도시다. 이곳에 암각화로 유명한 알타 박물관이 있다. 도착한 날이 주말이어서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승용차와 자전거로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린 버스는 10분이 채 못 돼 박물관에 도착했다! 알타의 바위그림은 북유럽 최대 규모의 암각화군으로 알타피오르(Altafjord)의 머리 부분에 위치한다. 알타 암각화는 1985년 노르웨이 유일의 선사시대 기념물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됐다. 그래서 알타 박물관에는 ‘세계유산 암각화센터’라는 명칭도 함께 붙어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알타 바위그림’은 알타 지자체 내 네 곳의 암각화 유적지(이엠멜루프트, 코피오르, 스토르스테이넨, 암트만스네스)와 한 곳의 암채화 유적지(트란스파렐브)를 가리킨다. 암각화는 새겨진 그림이고 암채화는 채색되어 그려진 그림이다. 암각화뿐만 아니라 비록 소수지만 암채화도 포함돼 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알타 암각화’보다 ‘알타 바위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하겠다. 
 
알타의 이엠멜루프트에 위치한 알타 박물관-세계유산 암각화센터 입구. 사진=박성현
 
이 다섯 곳 외에도, 알타 지자체에는 콤사와 이스네스토프텐처럼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바위그림 유적지들이 몇 군데 더 있으며 이곳들도 다른 유적지와 함께 알타 박물관이 관리한다. 알타 박물관은 시내 중심에서 약 5km 떨어진 이엠멜루프트(Hjemmeluft)에 위치하는데, 이곳에 가장 많은 암각화가 집중돼 있다. 이엠멜루프트는 알타 암각화 중 일반 관람객이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박물관은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박물관 내부의 전시실에도 몇 개의 바위그림이 있긴 하지만, 야외의 광대한 암각화를 보려면 눈이 내리지 않는 5월~10월을 이용해야 한다. 
 
알타의 이엠멜루프트에 위치한 알타 박물관-세계유산 암각화센터(흰색 건물)와 알타피오르가 보인다. 사진=박성현
 
알타 지역의 바위그림 중 최초로 발견된 것은 일명 ‘삐삐돌(Pippisteinen)’이라 불리는 암각화다. 50cm가 조금 안 되는 길이의 돌에 단 하나의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그 형상이 스웨덴 작가 린드그렌의 동화 ‘삐삐 롱스타킹’의 주인공 삐삐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79년 TV 외화 ‘말괄량이 삐삐’로 처음 소개돼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다. 알타 박물관에 전시된 돌을 보니 정말 옆으로 뻗친 양 갈래 땋은 머리의 삐삐가 연상돼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이 돌은 1950년경 알타피오르 서쪽의 이스네스토프텐 근처 예르문스비의 감자밭에서 현지 농부에 의해 발견됐다. 한참 후인 1998년부터 이스네스토프텐 근처 지역에서는 여러 개의 새로운 암각화가 발견되기도 했다. 두 번째로 발견된 알타의 바위그림은 1966년 트란스파렐브의 암채화인데, 사실은 1926년 핀란드 민족지학자가 먼저 발견했었다. 이후 알타피오르의 상단에서 수많은 암각화가 발견되는데,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암각화 유적지 네 곳은 1973년부터 시작해 모두 1970년대에 발견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도 알타 지자체의 여러 곳에서 새로운 암각화와 암채화가 발견됐지만 유네스코 등재 이후라 목록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알타 암각화 중 가장 먼저 발견된 일명 '삐삐돌'이 알타 박물관 내부에 전시돼 있다. 사진=박성현
 
피오르 해안의 암각화 산책로
 
알타 바위그림의 제작 연대는 약 7000년~2000년 전, 즉 기원전 5000년~0년으로 추정된다. 연구자들은 이를 시간에 따른 변화―달리 말해 암각화가 위치한 해발고도 수준―및 각 수준의 상이한 특징에 따라 여러 단계로 구분하는데, 절반 이상이 가장 초기 단계에 만들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알타의 바위그림이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될 당시에는 형상의 수가 3000개 이상으로 추산됐지만, 그 이후 지속적인 발견에 의해 60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중 암채화는 총 10개의 암면에 50개의 형상일 뿐이어서 대다수는 암각화다. 2024년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암각화는 약 7000개, 암채화는 약 100개로 증가했다. 가장 큰 유적지인 이엠멜루프트의 암각화 산책로는 알타피오르를 따라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데, 주위의 자연경관이 놀랍도록 아름답다. 탐방로도 워낙 잘 조성해 놓아 관람객이 안내책자나 오디오앱의 설명을 참고하면서 암각화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알타 박물관의 암각화 산책로. 암각화가 있는 바위들 사이로 통로를 조성해 놓았다. 사진=박성현
 
암각화는 이엠멜루프트만 양쪽의 해안 암석 경사면에 새겨져 있으며, 이곳에서만 3000개 이상의 표현물이 발견됐다. 현재는 암각화가 해발 8.5m~26.5m 사이에 위치하지만 원래 암각화들이 새겨질 때는 해안가에 있었다. 상이한 해발고도에 암각화가 남겨진 것은 빙하기 이후 이 지역의 지질경관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얼음이 녹고 빙하가 짓눌렀던 땅이 계속 상승하면서 사람들은 새로 형성된 해안선을 따라 새로이 솟아난 암석 노두에 그림을 새겼다. 여기에는 암각화가 해안의 매끄러운 바위 표면에 만들어졌다는 점과 이 시기 육지가 지속적으로 융기했다는 점이 학술적 전제로서 연구자들 사이에 동의되고 있다. 결국, 바다에서 멀어지고 높은 지점에서 발견된 암각화일수록 오래된 단계, 즉 더 일찍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연대 측정은 암채화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엠멜루프트에 위치한 알타 암각화. 그림들이 상이한 해발고도에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사진=박성현
 
산책로의 알타 암각화는 처음 만나는 그림부터 선명한 빨간색으로 다가온다. 암채화라서 그런 게 아니다. 1970년대에는 암각화를 발견한 즉시 빨간색으로 칠해 더 잘 보이도록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한다. 덕분에 관람객이 편리하게 볼 수는 있지만, 쪼거나 갈아 파 새긴 형상의 질감이 주는 입체감이나 생동감은 사라지고 밋밋해졌다. 빛에 따라 자태를 달리 드러내는 암각화 고유의 특징과 신비스러운 매력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림 자체는 장관인데, 석양에 비친 오네가호수 암각화와 잘라부르가 암각화가 전해 주던 고래로부터의 감동은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은 색을 칠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판단으로 암각화 본연의 모습과 원래의 특질을 보존하기 위해 예전에 입혔던 빨간색 색소를 제거하고 있다 한다. 그래서인지 산책로의 후반부로 가면 색을 입히지 않은 고유의 형상들을 볼 수 있는데 대신 전반부의 그림들과는 달리 알아보기가 어렵다. 반면, 붉은색으로 칠해 평면적으로 바뀐 그림들의 경우 관람객이 그림의 스토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 딜레마인 셈이다. 
 
붉은색을 입혀 그림이 선명하지만 질감과 암각화 본연의 느낌이 사라졌다(왼쪽의 측정자로 크기 가늠). 사진=박성현
 
붉은색 색소를 제거한 상태의 암각화. 사진=박성현
 
암각화를 구경하면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도중에 보트 전시장이 나온다. 다양한 옛 배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좀 더 걸어가면 고고학 발굴 체험을 놀이처럼 해 보는 공간도 있다. 바로 옆에는 사미족 천막을 본뜬 듯한 텐트가 서 있는데, 그 안에서 석기시대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물을 볼 수 있다. 
 
암각화 산책로 도중에 만나게 되는 보트 전시장. 예전 배들이 모여 있다. 사진=박성현

알타 암각화의 다양한 형상들
 
알타 암각화에는 사람 및 압도적으로 많은 순록과 엘크를 비롯한 곰, 개, 늑대, 여우 등의 동물, 거위와 오리, 백조, 가마우지 등의 물새, 배와 노, 작살, 고래와 바다표범, 연어와 넙치 등 해양동물과 어류, 도끼, 활, 창, 검과 같은 도구 내지 무기, 울타리, 십자형과 물방울 형태, 격자무늬와 추상적 또는 기하학적 문양, 눈이나 얼음 위에서 신는 신발인 설상화 및 그 자국, 곰 발자국 등 다양한 형상들이 있다. 사람들은 육상 또는 해상에서 사냥을 하고 춤을 추거나 의례를 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 중이다. 임산부임을 알 수 있게 표현하거나 남근 또는 음문을 묘사해 성별을 구분하기도 한다.  
 
사냥하는 사람들, 순록과 곰, 곰발자국, 격자무늬 등이 보인다. 사진=박성현
 
초입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은 수많은 야생순록과 그들을 가두기 위한 울타리들이다. 옛 북극의 주민들이 내륙의 겨울 목초지와 해안의 여름 목초지를 이동해 다니는 야생순록 무리를 협동해서 사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옆으로는 곰사냥을 하는 사람과 곰발자국, 곰이 겨울을 보냈을 굴로 추정되는 이미지가 보일 뿐만 아니라, 배와 배에 탄 여러 사람들, 수렵이나 어렵에 성공한 사람의 모습 등, 그 전체적인 구성과 세부묘사가 풍부하고 안에 담긴 서사는 매우 흥미롭다. 게다가 자연적인 암석의 표면이 그림과 어우러져 마치 강, 계곡 같은 풍경 속에 형상들이 놓인 것처럼 보인다.  
 
곰발자국과 곰이 겨울을 난 굴로 보이는 이미지, 배 등이 보인다. 암석 표면이 자연 지형처럼 형상과 어우러지고 있다. 사진=박성현
 
순록 무리와 울타리. 사진=박성현
 
알타 암각화에는 엘크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는 듯한 모습, 임신 중이거나 출산한 동물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다산’은 생존을 위해 중요한 개념이었을 것이다. 직관적으로 알 수 없는 형상들도 있는데, 가장자리에 줄무늬가 있는 물방울 모양의 신비로운 형상이 특히 이목을 끈다. 의례용 도구인지 덫과 같은 사냥용 도구인지, 장식품인지 혹은 우주의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것인지, 그 정체와 의미는 오리무중이다. 그 밖에도, 배 위의 사람들 중 무엇인지 알 수 없는―아마도 사냥도구일 수 있는―물체를 머리 위로 치켜든 사람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북극 바닷가 주민들에게 배는 교통수단 겸 해양수렵활동의 수단으로서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그래서 헤엄을 잘 치는 중요한 사냥감이자 동반자였던 엘크가 사냥 성공의 기원을 담아 항상 뱃머리를 장식한 듯하다. 
 
가장자리에 줄무늬가 있는 물방울 모양의 신비로운 형상으로,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사진=박성현
 
앞사람은 활을 쏘고 뒷사람은 사냥도구 같지만 뭔지 알 수 없는 물체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있다. 사진=박성현
 
박성현 경상국립대 학술연구교수(perceptio@hanmail.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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